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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행복한 영화보기 13. - 연극 "대한민국 김철식"

by 장돌뱅이. 2005. 2. 26.


한국 문단의 기인으로 폐허의 50년대를 호방하게 살다간 시인 김관식은

육당 최남선의 수제자이며 미당 서정주 시인의 동서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 출판 기념회나 문학단체 총회 같은 곳에 나타나 “자유당 선거 유세한 자가
이 신성한 회의를 더럽히다니 말이 되어? 당장 하단하렸다!“라고 소리치며 회의장을
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4월혁명 이후 용산 갑구에서 “민주당의 아성 장면을 무너뜨리기 위해“ 민의원에 입후보를 하고,
유세장에는 문학 하는 친구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르네상스 이후의
휴머니즘” 운운하는 찬조 연설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는 홍은동 시유지에 무허가 건축물을 짓고 ‘홍은동 산1번지’라고
지정하고 단속반과 싸워 실제로 법원등기에도 행정관서에도 산1번지라는 지번으로
정해지게 했으며, 홍은동 골짜기 일대의 모든 술집이 그의 단골이어서
마음에 맞는 벗이 오면 안주도 없는 깡술을 마시며 그 골짜기 술집을 순례하곤 했다.

그는 항상 ‘대한민국 김관식’이라는 커다란 명함을 찍어서 다녔다고 한다.

시인 고은의 글을 인용하면 그는 ‘GI워커화를 신고 GI작업복에 새까만 물감을 들여 입고
해박한 학문과 기억력만 없다면 일방적인 명동의 특수깡패로서......과연 아무도 그에게 맞붙어 본 일이 없고
누구나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그는 혼자서
파천황편(破天荒篇)의 활극을 일삼았다.
그 5리쯤 되는 느릿느릿한 강경 사투리, 결코
서정적 유음(流音)이 없는 그의 분에 못 이기는 것 같은 사투리는
명동의 가짜 실존주의,
명동의 가짜 앙뉘, 명동의 가짜 절망, 명동의 가자 모더니스트, 명동의 가짜 전후 문학군들을
한 촌놈의 육탄으로 휩쓸고 다녔다.“


아내와 함께 본 극단 아리랑의 연극 ‘대한민국 김철식’은 제목의 유사성 때문에
김관식을 닮은 어떤 호방한 사내의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연극의 제목도
거기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국가와 민족!”

연극 속의 김철식은 일생은 오로지 이 두 단어를 생각하고 그 두가 지를 위한 실천에
투철한 삶이었다. 김철식은 이를 위해 시종 ‘좌충우돌’, ‘파란만장’, ‘무모엉뚱’하면서도
‘단순명료’하게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한다.
그 이외의 일은 “개미 똥꾸멍만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의 다소 과장된 삶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굴절 많은
사회와 역사가 너무 거짓스런 ‘복잡다변’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김철식’은 정치성 짙은 연극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한 사내,
원작자의 말대로 “유순한 양떼이기를 거부하고 잃어버린 야성을 회복하되, 썩은 고기를
처먹고 다니는 하이에나는 철저히 경멸하는“ 사내의 도전을 그린 연극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힙합 춤을 위해 목숨을 거는 나이 어린 그의 손녀의 그것과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도전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결국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86년 아내와 나는 울산의 한 예식장을 빌려 공연된 극단 아리랑의 ‘아리랑’을
본 적이 있다. 좁은 예식장을 가득 메운 관객 속에서 아리랑의 창단 공연을 보며
지금은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김명곤의 연기에 즐거워했는데
그 이후 극단 아리랑의 공연은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않아 믿음이 간다.
딸아이도 극단 아리랑의 ‘첫사랑’을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다.

김철식 역으로 나온 배우 박철민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배우이다. 그의 얼굴만 봐도 흥겹다.
영화에도 가끔 단역으로 나와 우리를 반갑게 하지만
역시 그는 연극 공연장 조명 아래에 있어야 진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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