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동요 불러주기

by 장돌뱅이. 2020. 10. 24.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영역 보호'라는 본능적 시샘이나 투정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대로
변화된 환경에 첫째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동생 보느라고 내 말은 잘 안 들어준다"던가,
"왜 동생한테는 모두 다 양보를 해야 하나"라는 식의 이전엔 없던 말을 자주 한다.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아내가 둘째를 안아주거나 르는 말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가족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것에 꽤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첫째와 가장 친한 친구인 나는 둘째를 안아주거나 분유를 먹여주는 일은 아예 삼가하고 있다.
둘째에 대한 갈증은 첫째가 유치원에 가 있는 '노마크'(?) 찬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조심스럽게 둘째를 품 안에 안고 포근한 중량감을 느끼며 안방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건너방으로 천천히 어다니는 일은 살갑기 그지없다.

나는 몇 해 전 첫째에게 그랬던 것처럼 둘째에게도 나즈막한 목소리로 동요를 불러주기도 한다.
「엄마야 누나야」, 「섬집아기」, 「산바람 강바람」,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과수원길」, 「괜찮아요」 등등.
어릴 적 내가 제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동요 「나뭇잎 배」(윤용하 작곡)는 반복해서 부르게 된다.


낮에 놀다 두고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나뭇잎 배」-


「나뭇잎 배」를 부르면 엄마가 떠오른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엄마'는 적절하지 못하달 수도 있지만 누구나 마음 속으로 생각할 때는 어머니가 아닌 엄마 아닐까?
어린 시절 백열 전등 아래 콩을 까는 엄마 옆에 엎드려 「나뭇잎 배 흥얼거린 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 아련한 날의 기억은 내게 평화의 어떤 원형과 같다.
둘째 친구에게 노래에 스민 평화로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한다.
내가 자신만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첫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둘이 되었다고 우정과 사랑이 반으로 나뉘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친구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일상과 단상 > 내가 읽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제비 당기는 날  (0) 2020.11.19
2020년 10월의 식탁  (0) 2020.11.12
영화 『액트 오브 디파이언스』  (0) 2020.10.23
2020년 9월의 식탁  (0) 2020.10.03
창밖에는 비오고요  (0) 2020.09.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