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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수제비 당기는 날

by 장돌뱅이. 2020. 11. 19.





가을비가 유난히 요란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눈부셨던 단풍들을 훑어내 듯 떨어뜨렸다.
내일부턴 기온도 뚝 떨어진단다.
겨울이 한걸음 더 다가선 것이겠다.

 

늦가을 비와 감미로운 '배고픔'.
'속살까지 뜨거워지는' 한 그릇
수제비가 당기는, 아니 '땡기는' 하루였다.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이명윤의 시 -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 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겁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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