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섭지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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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바람소리만으론 태풍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제주에서는 바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라지만
비까지 몰아치니 계획했던 다랑쉬오름은 포기를 해야 했다.
올레길을 걷는 것도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바람을 따라 비가 우산 밑으로 들어오는 터라 장시간 걷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위 사진 : 비바람이 몰아친 덕에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다.
대안으로 김영갑갤러리와 이중섭미술관을 목표로 잡았다.
가는 길에 잠시 신양리에 있는 섭지코지에 들려보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언덕으로 오르는 동안에 바람은 여전했지만 다행히 비가 멈추어 주었다.
*위 사진 : 협자연대 앞에 선 딸아이
섭지코지는 ‘좁은땅’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언덕 끝에는 조선 초에 세워져 비상통신망으로 사용했던 봉수대인,
높이 4m. 가로 세로 9m 정방형의 협자연대(俠子煙臺)가 있다.
*위 사진 : 섭지코지의 풍경
날씨가 맑아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궂은 날씨에도 섭지코지는 아름다웠다.
검은 절벽 위에 작고 아담한 흰 색의 등대가 그랬고
흰 거품을 문 파도가 부서지는 절벽 아래 바위가 그랬다.
한류의 영향인 듯 많은 중국인들이 텔레비전 연속극 “올인” 촬영 세트를
찾고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국 대중문화에 심취한 외국인들에 대한
서비스로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이미 경치만으로 충분한 이곳에 그런 ‘가짜’ 건물이
들어서 있다는 것은 내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 십년 쯤 지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올인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은 무의미한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특별한 재활용의 아이디어가 없다면
적절한 시점에서 철거를 하고 그 자리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올인의 세트장은 그런저런 이유로 눈감아 준다고 해도
등대와 일출봉 사이의 해안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은
(아마 무슨 리조트의 건물 아닐까?)
고약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개인 땅에 무슨 건물을 짓든 임자 마음이었겠지만
어찌되었건 리조트에(?) 묵는 소수의 손님을 위해 섭지코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일대의 풍경을 즐기고 감동하는 기회는 작아진 셈이다.
이런 불만도 ‘경제를 살리자는데!’ 한 마디에 그만 삼켜야 할지도 모를 시절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놈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피해 일출봉을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카메라에 담자니
각도마저 옹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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