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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행3 - 지독한 사랑 두 가지 - 김영갑

by 장돌뱅이. 2012. 5. 9.

김영갑.
죽을 만큼 제주도를 사랑한 사람.
일생을 두고 제주도에 전율한 사람.
한라산이 제주도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듯
그가 제주도고 한라산인 사람.

나는 무엇에 그토록 절실해본 적이 있던가.


*위 사진 : 생전의 김영갑(두모악갤러리 팜플렛에서 재촬영)

두모악갤러리에 걸려있는 시인 정희성의 글을 옮겨본다.


"<이어도를 영혼에 인화한 사진가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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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홀리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과 소리쳐 울 때가 더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처음 만나곤 열병을 앓았다.
지독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소름 끼치는 그리움 때문에, 샛살림 하듯 오가는 것으론 갈증만
더 할 뿐이어서 서울살이를 접고 아예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1982년부터 3년 동안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제주사진을 찍던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신내림 받은 무녀처럼 섬을 헤집고 다니며 제주의 얼과 속살을 카메라로 받아 적었다.
중산간마을에서는 단편처럼 살다가는 쪽달과 들벌레 야윈 곡소리, 현무암 쪼개는 마른
번개를 담았다. 용눈이오름 흐벅진 굼부리에 들어가서는 카메라를 놓고 하루종일 바람과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영토가 늘어났다.

마라도와 우도가 영지로 편입되고 해녀를 비롯해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경들이 새로운
식솔이 되었다.

<필름에 미치다>
홀로, 필름에 미쳐 돌아다니는 댕기머리가 낯선 사람들이 간첩으로 오인해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가수로 착각해 사인 종이를 내밀기도 했다. 한 10년 도 닦는 마음으로 찍자고 한 것이
15년을 훌쩍 넘기면서 재산이 늘었다. 비루먹어도 필름을 사고, 인화지 살 돈만 있으면
행복하기만 한 15년 세월 동안 제주 사진 2만 컷이 남았다.

가끔씩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영지에서 기른 식솔들을 사진전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놓았다.
도마뱀처럼 풀어 놓은 작품 앞에서 푸들푸들 놀라는 사람이 오히려 없었다.
그게 차라리 좋아 편안히 웃다가 제주로 돌아와서는 다시 영혼의 영토를 늘리는 작업에 매달렸다.

<제주, 삽시간의 황홀>
마라도, 해녀, 오름을 거치는 순서로 사진전을 엮고 나서는 '바보 같은 사랑'으로 사랑법을
바꾼다. 작곡가 김희갑 선생 부부가 비나 피하며 다니라고 선물로 준 르망 레이서가 쪼글
쪼글해지도록 제주 곳곳을 누비더니 언제부터인가 망부석이 되어 구름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바람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삽시간의 황홀을 선물하는 제주의 혼을 카메라에 가려두고
정한 장소에 나가 앉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의 변화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안겨드는 제주의 바람과 구름이 비로소 사람의 것이 되었다.

<"나 오십견인가 봐!">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엄살을 떨었다. 카메라가 무겁다고 했다. 가끔씩 손도 떨린다고 했다.
그러다가 열흘 넘게 소식이 끊겼다. 아무 생각없이 충무로며 동승동이며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분을 삭였다고 했다. 루게릭 병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서가 그의 품 안에 있었다.
성읍마을에서 성산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삼달분교를 얻어 마악 두모악갤러리의 터를
닦기 시작한 2001년 겨울 무렵이었다.

2002년 여름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문을 열었다. 그 사이 졸참나무 이파리처럼 더
야위어 갔고, 영혼의 빛깔은 그가 사랑한 마라도 물색으로 더욱 짙어져 갔다.
그럭저럭 단장을 끝낸 두모악 담벼락에 기대 밤새워 별을 쳐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3년 쯤 더 살면 잘 사는 거라네!"
부랴부랴 제주로 달려 온 친구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는 두모악 옥상에 올라가 표선
앞바다를 보여주었다.

비가 왔고,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2005년 1월 서울에서 사진전이 열렸다. '내가 본 이어도1, 용눈이 오름'.
2005년 3월 24일부터 4월 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신관 전시실에서 다시 사진전이 열렸다.
'내가 본 이어도, 3: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
주인공은 없고, 객들이 그가 20여년 세월 동안 길러 온 영지의 식솔들 앞에서 푸들푸들
놀라고 있었다. 그 시간에 그는 누워있었다.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홀로 두모악 골방에 누워 20여년 세월 동안 자신을 홀린 제주의 풍경을 한 컷 한 컷 떠올리고 있었다.

그 회상을 다 끝냈음인가?
2005년 5월 29일, 눈을 감았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가 남긴 육신의 흔적을, 생전의 그가 갤러리 뒤란에 심어 놓고
애인처럼 아끼던 감나무 밑에 뿌렸다. 비가 왔고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움직일 수 없게 되니까, 욕심부릴 수 없게 되니까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
때가 되면 떠날 것이고, 나머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철들면 죽는 게 인생, 여한 없다.
원 없이 사진 찍었고,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마지막 해의 봄, 유채꽃이 질 무렵엔
혀의 근육도 굳어져 더듬더듬 말을 잇던 김영갑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을 채근하듯
두모악에서 삽시간,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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