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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행4 - 지독한 사랑 두 가지 - 이중섭

by 장돌뱅이. 2012. 5. 9.

발가락군을 사랑한 아고리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화가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져야 했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헤어진 부부는 다시는 만나지 못 한 채 안타깝게 편지만 주고받았다.
편지에서 이중섭은 아내 마사코를 발가락군이라고 불렀다.
연애시절 이중섭이 발가락을 다친 마사코를 치료해주면서 발가락이 예쁘다고
붙인 애칭이다. 아내는 이중섭의 턱이 길다고 아고리라고 불렀다.
일본말 아고는 턱이고 리는 이중섭의 성이었다.


*위 사진 :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살던 방과 집

그들은 한국전쟁 시절 서귀포에서 일 년 가까이 지냈다.


   서귀포 언덕 위 초가집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꼭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는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 나희덕의 시,  「섶섬이 보이는 방 - 이중섭의 방에 와서」중에서 -  

초라한 그의 집 뒤 언덕 위에는 그가 생전에 누리지 못한 거대한 미술관이
들어서 있었다. 아직 그림에 관한 개안을 하지 못한 나는 그의 이름을 들을 때면
먼저 그의 가난과 함께 편지글에서 보이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위대한 작품이라는 “소”보다도 더 위대해 보인다.
그가 그런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기적일 뿐이다.

   어떤 부부가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젊은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만한 애정이 또
   없을 것이오. 일찍이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대향
   (이중섭의 호), 남덕이 서로 열렬하게 서로 사랑하는 참된 애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오.
                                            
                - 이중섭의 편지 중에서 -

너무 큰 욕심으로 살 일이 아니다.
이중섭의 일생 앞에서 적어도
매일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내일을 걱정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부부는
그것만으로 이미 그리고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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