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터를 찾아>
어느 덧 겨울의 초입이다.
지난 계절의 무성하던 이파리들을 다 떨군 나무들이 가느다란 가지만으로
찬 바람을 견디고 있다. 들도 산도 텅 비어만 간다.
날마다 점점 더 기온은 내려갈 것이고 머지 않아 눈도 내릴 것이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보면 경이롭지 않은 계절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요즈음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기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좋고 그 하늘을 받들고 선 나무들이 좋다.
혹독한 계절을 견디기 위해 버릴 것을 다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으로 버티고 선 나무들은 이 계절만이 주는 감동이다.
헐벗은 나무들은 세한도 속에서 읽혀지는 옛 선비의 정신처럼 꼿꼿하고 당당해 보인다.
아내와 함께 초겨울의 문막 근처 남한강변의 옛 절터를 돌아보았다.
영동고속도로 문막 나들목을 나와 지방도를 타고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터와 거돈사터를
다녀온 것이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문막평야의 논밭에는 한 해의 생산을 갈무리한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어느 노스님의 글 제목처럼 ‘텅빈 충만’으로 가득했다.
자연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있어야 할 때 있게 하고 쉬게 할 때 쉬게 하며
사라져야 할 때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내게 ‘자연스럽다’는 말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자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폐사지 자주 찾곤 한다.
그것도 나이가 먹어가는 징후인지는 모르겠으되 이름난 절집의 화사한 단청과
경쾌하게 휘어지며 굽이치는 가람의 지붕선이 싫은 것은 아니나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다만 몇 개의 석조물과 주춧돌만이 옛 영광을 전해주는 폐사지의
차분함과 아늑함은 아내와 나를 초겨울의 산과 들을 대할 때와 같은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가끔씩 폐사지에 앉아 있다 보면 우리는 마치 옛 절터가 수명이 다 한 고목이나 추수가
끝난 논의 벼 그루터기처럼 자연의 일부인 양 착각을 하기도 한다.
<법천사(法泉寺)에서>
*법천사터 발굴 현장
법천사는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한적하리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절터 주변은 발굴 작업으로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법천리 서원마을의 전체가 모두 법천사 절터였다고 전해지는 터이니 그 발굴 작업의 범위가
넓은 것은 당연한 노릇이겠다.
고려시대의 이름난 선사인 지광국사의 부도비가 있는 산언덕으로 오르는 길옆의 발굴현장에는
절 건물의 주춧돌로 생각되는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국보 제59호인 지광국사부도비는 우리나라 부도비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한다.
특히 비신 측면에 깊고 뚜렷하게 새겨진 용무늬는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지광국사 부도비.
부도비가 새워져 있는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가면 법천사의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당간이란 사찰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불보살의 공덕과 벽사(辟邪)적 목적 아래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세우기 위한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또한 당간지주는 사찰 영역임을 알리는 표지판 기능도 있었으니
법천사터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도 되겠다.
법천사의 당간지주는 화려한 부도비와는 달리 단순 소박한 외관으로 정감이 갔다.
토단 위에 서있는 모습은 당당하고 씩씩해 보였다.
*법천사터 당간지주.
어떤 유적을 볼 때 그 유적이 무슨 이유로 그곳에 세워졌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경복궁 앞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가면 전국 각지에서 온(?) 석조 유물들이 세워져 있다.
그 중에는 지광국사 부도도 있다. 부도비가 강원도의 절터에 있으니 부도는 당연히 그 곁에
있어야 할 것이나 우리의 지난 역사는 종종 있어야 할 것을 제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부도비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부도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일본으로 밀반출 되었다가
반환되어 원래 있었던 곳에 있지 못하고 서울 한복판에 있게 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지광국사 부도
일제 강점기 동안에 일제 통치 권력이나 그의 비호를 받는 일본 무뢰배들의 우리 문화재
강탈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우리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
침략의 괴수인 이토히로부미는 고려고분의 파괴와 도자기 도굴을 크게 조장시킨
원흉이기도 했다.
일제는 고분의 도굴에서부터 수 만 점에 달하는 고려청자나 석굴암의 감불, 불국사
다보탑의 사자상같은 절의 석조물이나 불상, 온갖 고서와 그림 등 이 땅의 소중한 유산들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쓸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한국 강점이 한국인을 위한 것이었다는 식의 망언을
아직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 일본 안의 여러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서 한일합방 전후 혹은 그 이후에 이 땅에서
반출해 간 부지기수의 각종 문화재의 일부가 목격 확인되고 있지만 이미 반환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게 돼 있지가 않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과거의 불법적인 반출문화재
반환 요구와 실현은 1965년의 반환 목록으로 일단 끝나 있다.”
-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 중에서 -
자신의 정치논리에 눈이 먼 당시의 군사정권이 선조의 넋이 담긴 소중한 우리의 자산을 헐값에
정리해버린 무지한 실례 중의 하나인 것이다.
<거돈사(居頓寺) 터에서>
*거돈사터 입구의 거대한 느티나무
법천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돈사터가 있다.
거돈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명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절터에 남은 기와 조각과 토기 석물들을
근거로 신라 말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존속해 왔던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부론면에서 거돈사터에 다다르는 사람은 누구나 절터보다 먼저 석축 위에 선 거대한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수령이 무려 천년으로 어쩌면 거돈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을 지나온 나무에게 존경과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거돈사터 전경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산골답지 않게 너른 절터가 나온다.
얕은 산들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갑갑함이 느껴지지 않고 툭 트인 느낌이 들고
트여 있으면서도 삭막하지 않아 명당임을 느끼게 하는 절터이다.
너른 절터에 절의 흔적으로는 삼층 석탑과 화강석 불대좌, 운공국사 부도비 등 몇 개의
석조물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절터의 끝과 끝을 아내와 반복하여 천천히 거닐었다.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천지에 마치 우리 둘과 바람뿐인 것처럼 고요했다.
그 적막함은 세월의 두께가 켜켜이 쌓인 깊은 심연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 잠겨 우리는 아득했고 아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원공국사부도
이곳도 법천사처럼 고려 때 스님인 원공국사의 부도비가 있는데 부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세워져 있다. 역시 일본인 때문이다.
천년 가까운 세월을 이 곳 거돈사 터에 있던 원공국사의 부도는 언제 누가 어떤 수법으로
훔쳐갔는 지는 모르지만 해방 전에 서울 남대문 시장 근처에 살던 와다라는 일본인이 자신의
정원에 세워 놓고 있었다. 한국인은 집안에 절의 석조물을 세우지 않고
거돈사터는 지금도 가려면 비록 포장길이긴 해도 그리 가까운 길은 아닌데
그 옛날 그런 외진 곳까지 찾아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운 일본인들의 탐욕에 놀라게 된다.
<국토가 아름다운 것은>
쌩떽쥐베리는 그의 동화 어린 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물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국토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 빼어난 계곡과 푸른 하늘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 우리 보다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과
숨결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주와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서는 옛부터 고달사, 법천사, 거돈사, 흥법사 같은
이름난 절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 중 원주 부근에는 무려 100군데가 넘는 절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역사적인 유적이라기보다는 세월에 녹아들어 자연과 동화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좋을 흔적들이지만 그런 곳으로의 떠남과 만남은 언제나 따뜻하고 행복하다.
돌아오는 길 유장한 세월처럼 길게 흐르는 남한강 강물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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