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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by 장돌뱅이. 2022. 1. 15.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병실에서의 죽음"

한 사람이 지금 막 병실에서 세상을 떠났나 보다.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슬픔과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도를 올리거나 벽을 잡고 서있기도 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어딘가를 망연자실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절규」로 잘 알려진 뭉크의 그림이다.
뭉크가 14살일 때 누나 소피는 15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침대에서 벗어나 의자에 앉는 것이었고 그렇게 죽었다고 한다. 

작년 12월 30일부터 불과 일주일 사이에 3건의 부고를 받았다.

후배와 지인의 어머니, 그리고 집안 형님이었다.
몇 달 째 병석에 있었다 해도 모든 죽음은 느닷없기 마련이지만, 특히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후배는 더 그러했다. 처음엔 그가 보낸 타인의 부고인 줄 알고 메시지를 읽다가 본인의 부고임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직 50대의 그는 탄력있는 육체의 소유자로 평소 축구와 배구, 테니스와 볼링 등 운동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자다가 갑자기 돌연사를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쌌다.
조문을 받는 유족들의 얼굴에서도 슬픔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자신이 사는 동네의 단골 통닭집에서 밀린 소주를 나누자던 전화 속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했다.  

화분 하나만 치워져도 그 빈자리가 눈에 밟히는 법이다.
하물며 추억을 함께 만든 가까운 이들이 떠나버린 공간을 흔적 없이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음이 삶과 마찬가지로 자연 현상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이 개별적인 죽음에 위로를 주거나  슬픔을 차감시켜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그리고 떠난 이를 가슴속에 담아두는 일뿐이겠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박인환, 「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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