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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케이팝 덕분에 경험한 작은 일들

by 장돌뱅이. 2022. 3. 20.

한국 가수 비의 도착 사진을 1면에 실은 태국 영자 신문, 2006년
방콕 시내 비의 공연 광고, 2007년


미국에 주재할 때 미국 콜로라도 덴버로 아내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콜로라도 야구팀의 경기를 보기 전에 밥을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식당에 들어갔다.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이 주문을 받고 난 후 물었다.
"어느 나라 분인가요?"
한국인이라고 하니, 반갑다면서 조심스레 뜻밖의 제안을 했다.
"주문한 것 중 음료비는 내가 내고 싶은데 괜찮겠는지 ······?"  

의아해하는 아내와 내게 직원은 자기가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났으니 꼭 사고 싶다고 했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노래까지 조금 불러주었다. 혼자서 공부한 한국어 발음이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귀를 기울인 끝에 가까스로 안재욱의 "포에버"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로서도 꽤 오래된 노래였다. 

그즈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 유행했다. 미국에서도  라디오 방송과 야구장에서, 공원 모임이나 많은 행사에서 불려졌다. 2013년 2월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미식축구 슈퍼보울 광고에 싸이가 나와 말춤을 추며 정점에 달했다.
(*이전 글 참조 : 2012.12.28  강남스타일)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웃 한인 자녀들은 학교에서 케이팝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 아이들이 한인 학생들에게 케이팝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비빔밥 같은 한국 음식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한인 학생들이 이제까지 자신들도 잘 모르거나 관심 없던 것들을 알아보고 답을 주는 과정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케이팝과 케이컬쳐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었다. 

왜 그랬는지 당시 이웃의 딸과 그 반 학생들은 한창 인기가 있던 동방신기나 엑소가 아닌, 이미 은퇴한 서태지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아이 때문에 놀란 지인도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서태지도 대학 안 갔다면서?"였다고 한다.


2018년인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일군의 학생들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처럼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학생 중의 하나가 직접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가는 길이 간단하고 거리가 좀 있어서 아내와 둘이서도 산책을 겸해서 갈 거라고 사양했지만 그 학생은 괜찮다고 앞장을 섰다. 자신을 BTS의 팬이라고 소개하며 공연을 보러 한국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BTS 때문에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로 한국인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보였다. 학생은 목적지 바로 앞까지 동행을 해주고서야 돌아섰다. BTS팬임을 재삼 강조하면서.

요즈음 대세는 단연 BTS다. 여섯살 손자저하조차도 BTS 팬이다. 아마 유치원에서 듣고 빠져들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 딸아이가 차에 타면 무조건 H.O.T 노래를 틀어야 했듯이 손자에겐 오직 "DYNAMITE", "PERMISSION TO DANCE", "BUTTER"뿐이다. 얼마 전 손자가 BTS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다가 별안간 내 안경을 벗기더니 휙 던져 버렸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BUTTER"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함께 유튜브를 찾아보니 실제로 그런 영상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K-POP뿐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 한류가 강세다. 거래처 담당에게 한국 연예인의  실 사인이 든 브로마이드 사진을 선물하고 사업이 잘 진행되었다는 '무용담'이 해외 영업쟁이들 사이에 떠돌 정도다.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이런 호재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고민과 지원도 필요하겠다. 물론 그 고민과 지원이 간섭과 통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새로운 한류는 지금까지 그랬듯 상상의 힘에서 나오며, 상상은 자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라"는 60년 대 김수영 시인의 주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유효했다.   
이제는 '유통기한'이 끝나 지나간 한 시기를 증거하는 옛글로만 남아야 한다.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땜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는다.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한다. 그리고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문화의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김수영의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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