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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도' 눈이 온다

by 장돌뱅이. 2022. 3. 19.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나와 마을」,1911


오늘은 눈이 내릴 거라고 한다. 일부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까지 있는 모양이다.
3월도 하순인데 눈이라니! 
어제 저녁 때마침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는 김춘수의 시를 읽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면서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시인이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보고 쓴 시라고 한다.
그림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니 시인은 상상으로 마을에 눈을 더한 것 같다.
아니면 이미 눈이 내린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샤갈은 러시아의 작은 유태인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음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그가 회상하는 고향 - 커다란 사람과 양(소?)의 얼굴이 마주한 사이로 교회와 마을의 집, 농기구 같은 것을 든 남자, 거꾸로 서 있거나 젖을 짜는 여인과 빛나는 초록색 열매의 나무들 - 은 화사하고 따뜻하며  몽환적이다. 

김춘수의 시도 그렇다. 때아닌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봄을 바라고 섰는 사람들의 새로 돋는(푸른) 정맥을 어루만지면서 지붕과 굴뚝을 하얗게 덮는다. 눈을 맞은 나무 열매에는 오히려 초록빛이 살아난다. 아궁이에는 따뜻한 불이 피어오른다.

그림도 시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어도 뭔가 따뜻하면서도 싱싱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내와 걷는 한강변 곳곳에 뭔가  터져나올 듯 푸릇푸릇 근질거리는 징후가 뚜렷하다. 이 비와 눈이 그치고 나면 봄은 더욱 완연해질 것이다.
계절은
늘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  


"삶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무정한 과정인 까닭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 사랑은 삶에 사회적 응집력을 주고 종교는
삶의 정수를 준다"고 샤갈은 말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도' 눈이 온다. 
자연과 세상의 변화 속에 심은 신의 뜻을 겸손한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아내와 둘이서 책과 음악, 커피와 이야기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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