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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따꼬 혹은 타코

by 장돌뱅이. 2022. 3. 15.

미국에 주재할 때  어떤 베트남국숫집을 강추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가 마치 식당 영업사원처럼 줄기차게 주장을 하여 국수내기 골프를 친 뒤 그 식당을 가보게 되었다. 골프장 가까운 곳에도 베트남국숫집은 흔했지만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는 호기심도 생겨 제법 먼길을 운전해서 그를 따라갔다. 나의 평가는 "쏘 쏘"였다. 그를 제외한 다른 일행의 평가도 나와 같았다. '그래 봐야 MSG' 조합의 맛'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섬세하지 못한 우리들의 미각을 탓할 뿐 그곳의 맛이 미국 최고, 아니 베트남 본토도 견줄 수 없는 경지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귀국을 한 후에도 음식 때문에 미국을 간다면 그곳의 국수를 먹기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에게도 그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오로지 음식을 먹기 위해 멕시코에 간다면 아마 TACO  때문일 것 같다. 다만 특정 음식점을 염두에 두진 않는다는 점이 그와 다를 뿐이다. 미국에 주재하며 국경을 넘어 멕시코를 오갈 때 TACO는 자주 먹던 음식이다. 축구 월드컵 대회 중 멕시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멕시칸 직원들과 모두 한 곳에 모여 응원을 한 뒤 축제 분위기 속에 먹은 음식도 TACO였다. 
( * 이전 글 참조 :
샌디에고 식당15 - 따꼬 TACO )   

TACO는 조리한 고기, 해물, 양파, 고수 등을  각종 소스와 함께 또르띠야라고 부르는 옥수수(밀가루) 전병(빵)으로 싸서   먹는 음식이다. 또르띠야는 멕시코 음식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르띠야를 기름에 튀겨 녹인 치즈를 얹으면 나초(Nachos), 또르띠야 사이에 닭고기와 살사 소스·치즈를 넣고 돌돌 말으면 엔칠라다(Enchilada), 치즈·소시지·감자··호박을 넣고 반으로 접은 뒤 구우면 케사디야(Quesadilla)가 된다. 

 멕시코에서 TACO를 파는 식당은 대체적으로  자그마한 규모이거나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와 비슷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간단하게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어 서민적인 멕시코의 패스트푸드다. 미국의 고급식당에서도 간혹 TACO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그니처 메뉴'는 아닌 데다가 미국화한 (TexMex) 음식이어서 원래의  TACO와는 조금 다른 맛이다. 물론 어느 것이 더 맛이 있다,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TACO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옥수수 가루를 재료로 구워내는 또르띠야의 냄새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튀기거나 밀가루 또르띠야로 만든 TACO는 잘 먹는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먹는 TACO를 미국식이라는 뜻의 '타코'로, 내가 좋아하는 멕시코 스타일은 '따꼬'로 구분 지어 부른다. 

넷플릭스에서 1,2부 합쳐 13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TACO 연대기』를 보았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 따꼬 까베사(머리고기),  따꼬 렝구아(소 혓바닥), 따꼬 뜨리빠(내장), 따꼬 아사다(구운 고기), 등을 넘어선  다양한 종류의 따꼬가 있었다. 또르띠야는 대동소이했지만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재료와 재료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랐다. 또르띠야의 지름이 60 -70c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 AL PASTOR 따꼬 (꼬치에 꽂아 구운 돼지고기)
- CARNITAS 따꼬 (돼지고기를 돼지지방인 라드에 천천히 익힌 것)
- CANASTA 따꼬 (돼지껍질, 콩, 감자)
- ASADA 따꼬 (잘게 다진 구운 소고기)

- BARBACOA 따꼬(땅에 묻어 구운 양고기)
- STEW 따꼬 (고기, 소시지, 쌀, 콩 등 뭐든 넣어 만든 스튜)
- SUADERO (소의 갈비와 피부 사이 고기)
- COCHINITA 따꼬 (지역 특종인 무모 돼지의 고기, 유카탄 반도의 대표 요리), 
- CABRITO 따꼬 (30 -40일 된, 아직 풀을 먹지 않은 새끼 염소 고기)
- 미국 '타코' (또르띠야를 튀겨서 크리스피=크런치=하드셸'타코'라고도 함)
- BURRITO (또르띠야를 크게 만들어 싸 먹는 따꼬의 일종)
- BIRRIA 따꼬 (염소 고기)
- PESCADO 따꼬 (생선 튀김)

『TACO 연대기』를 보고 직접 따꼬를 만들어 보았다. 또르띠야는 시중에서 구매를 해서 프라이팬에 구웠다. 밀가루로 만든 또르띠야 덕분인지, 내가 만든 것이 '따꼬'가 아닌 '타코'에 가까워서인지 아내는 잘 먹어 나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따꼬'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한 가지가 소스다. 그중에서도 아보카도를 주재료로 만드는 과카몰레( Quacamole)와 토마토 살사다. 토마토 살사에는 고수가 들어가야 하지만 미나리로 대체했다. 그래도 멕시코 국기색인 초록(희망), 흰색(순수), 빨강(사랑)의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바켓트에 올린 토마토 살사
*과카몰레
*돼지고기와 토마토 살사
*브리또와 두부샐러드

"따꼬는 노력이고 소명이자 유산이죠. 조국이자 정서예요. 따꼬는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고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이예요. (···) 멕시코에서  따꼬는 국가대표 축구팀이나 과달루페의 성모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따꼬는 우리 일상의 일부이며 우리의 자부심이죠. (···) 우리 문화의 일부죠. 우리 핏속에 흐르는 것이고 우리가 먹고 자란 겁니다.
『TACO 연대기』중에서 -

 따꼬는 가히 멕시칸들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겠다. 소울 푸드는 일반인들이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한 보통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맛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추억과 정서가 스며 있어야 할 것이다. 따꼬는 멕시코 사람에게 그런 모든 조건을 갖춘 음식인 것 같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된장찌개? 비빔밥? 뼈감자탕? 곰탕? 칼국수? 수제비? ······
나는 타고난 잡식성이라 회사 재직 시절 장기 해외 출장 중에 특별히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진 않았다. 어느 나라에 가건 아무 음식이나 잘 먹었다. 물론 가끔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었지만 경험한다는 생각으로 대하면 모든 음식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귀국하여 아내가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뜰 때면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기운이 입안에서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져나가곤 했다. 거기에 곁들이는 열무김치나 파김치. 우리나라까지는 몰라도 내겐 아마 그게 소울푸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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