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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코로나 이후

by 장돌뱅이. 2022. 3. 11.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째 접어든다. 그동안 몇 번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맨 먼저 미국 달라스에 사는 친구가 어머니의 부고를 알려왔다. 원래의 지병에 코로나가 더해지면서 격리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던 재작년이어서 엄격한 격리 때문에 하루 한 번 병원이 알려주는 메시지로만 환자의 상태를 전해 듣다가 그만 임종조차 못했다고 친구는 애석해했다.

두 번 째는 대학 동기의 어머니로 재작년 코로나로 입원했다 완치 판정을 받아 퇴원하였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코로나 이전엔 건강하셨다고 하니 코로나의 후유증인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세 번째는 노환으로 병원 통원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감염되어 입원한 후 끝내 돌아가신 지인의 어머니였다. 역시 엄격한 격리로 임종도 못했다고 한다.

3월에 접어들면서 나라 전체에 코로나 발생 건 수가 폭증하였다. 변종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위험도는 낮아진 대신에 전염성은 매우 강하다고 한다. 마치 포위망을 좁혀오는 적군처럼 감염 소식은 점점 더 가까운 주변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과 채 한 달이 안 되는 사이에 친구와 친구의 자식들, 손자가 다니는 유치원 주변에서 코로나가 발생하였다. 한 명씩 차례로 돌아가면서 걸리는 가족도 있었다.

손자친구를 돌보아주는 이모님께서 휴일에 코로나 감염소식을 전해왔다. 증상은 경미한 모양이었다. 부랴부랴 자가진단키트로 딸아이네 온 가족이 검사를 해야 했다. 한 번으로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하여 몇 번에 걸쳐 했다. 첫째 손자는 그런대로 검사과정을 이해하고 참아주었지만 아직 영아인 둘째는 자지러질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모두 음성이었다.

치명률이 떨어졌다고 해도 코로나는 여전히 가족들의 일상을 휘저어 놓는다.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은 가족간의 감염을 쉽게 하고, 특히 아이들이 감염되었을 경우 맞벌이부부는 여러가지 형태의 파생 문제로 복잡해진다.

이모님을 대신해서 손자돌보미로 아내와 내가 출동했다. 손자친구는 우리를 만나게 된 상황이 무슨 횡재라도 되는 양 환호성을 질렀다. 코로나 감염 여부로 잠시 심각했던 어른들도 크게 웃었다. 아이들 때문에 웃는다.

캐나다 캘러리 대학 교수인 아서 프랭크(Arthur W. Frank)는 그의 책 『아픈 몸을 살다』에서 질병의 가치는 우리는 삶의 경계로 데려가,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해준다고 했다. 질병으로 많은 것이 사라지고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지만, 질병의 고통은 우리를 "왜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는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하는 성찰의 기회로 이끈다는 것이다.

3월 중 코로나가 정점을 찍고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다만 코로나 이후의 일상이 단순히 이전의 재연이 아니라 조금은 새롭고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거창한 사회적 변화를 논하기 이전에 개인적으로라도 조금은 덜 욕심내고, 조금은 덜 조급해하면서, 조금은 더 소박해지고,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은 더 나누는 일상 - 그것이 지루한 고통과 아픈 이별을 치르게 한 코로나에서 그래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지혜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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