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뉘가 이 기(旗)를 들어 높이 퍼득이게 할 것이냐 >
듣거라
진실로 시방 이때이다.
이날을 놓친다면
만 번을 뉘우쳐 죽더라도 미치지 못하리니.
보라
이웃이 이웃을 믿지 않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매
물로 가면 목메어 목메어 우는 여울물소리
들로 가면 솔바람 통곡소리
그러나 이제는
여울도 마르고
산천에 초목도 다 마르고
짐승마저 깃을 거둬 자취를 감추거늘
나라도 인류도 이대로 망할까보냐.
시방 이때이다.
슬픔에 죽어가는 형제를 붙들어 일으키고
악한 자는 눈물로서 마음 돌이켜
이웃과 이웃
사람과 사람이 日月처럼 의지할 때는 이때어니.
그렇지 아니한들
강퍅한 자여 너희도
겨울 동산에 홀로 남은 이리처럼 고독히 죽고
새벽 하늘에 별빛 쓰러지듯
쓰러진 나라 위에 다시 나라가 쓰러지고
드디어 인류는 속절없이 멸망하리니.
진실로 시방 이때이다.
이 모질고 슬픈 인류의 마음을
햇빛같이 깨우칠 기(旗)를
높이 높이 들어 퍼득일 때는.
-청마 유치환의 시 -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이후 (0) | 2022.03.11 |
---|---|
다시 노무현을 떠올리는 새벽 (2) | 2022.03.10 |
오늘부터 사라질 '아무말 대잔치' (2) | 2022.03.09 |
『20대 대선, 우익 포퓰리즘을 반대하는 작가 성명』(퍼옴) (0) | 2022.03.07 |
강은 흘러야 강 (0) | 2022.03.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