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처음 만나는 여행지와 비슷하다. 낯선 재료를 , 낯선 방법으로 조리한, 낯선 풍미의 음식은 초행길의 여행에서 느끼는 긴장감이나 성취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부엌을 차지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나의 음식 솜씨는 '내비를 보고 운전하는' 초보 수준이다. 하지만 직접 만든 음식에는 맛집에서 사 먹는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믿는다.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혼밥'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밥은 기본적으로 함께 먹는 상대가 있는 행위다. 그 '함께'는 먹을 때만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혼자서는 물에 맨밥을 말아 고추장에 마른 멸치를 찍어 먹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럴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같은 조리법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도 밥상에 마주 앉을 상대방의 입맛을 고려하여 소금과 고춧가루의 양을 더하거나 줄이게 되지 않던가. 아내와 함께 밥상에 앉아 눈빛과 말과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우리 할머니는 (···)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중에서 -
음식이 개인의 영혼과 관계를 살찌우는 양식이 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맨 처음 파스타를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에 없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인 70년 대는 파스타가 대중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중적이었는지 아닌지를 모른다. 튀김에 막걸리 먹기에도 주머니가 얕았던 때라 흔했다 하더라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파스타를 먹어본 건 적어도 직장 생활을 한 30대 이후의 일이다. 아내가 어느 음식점에선가 국수를 먹는데 웬 스푼이 나오냐며 어색해하는 내게 면을 포크로 집어 다른 손에 든 스푼 머리에 대고 돌돌 말아가며 먹으라고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아는 파스타는 몇 가지 종류가 되지 않지만 이탈리아에는 재료와 면의 모양, 소스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 도시와 마을마다 대표하는 파스타가 따로 있을 정도다. 면의 종류가 수십 종류인데 소스 또한 수십 종류이니 이들을 조합시키면 '하늘의 별만큼 많은' 파스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부터 이상한 파스타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신부님 옷소매', '(주기도문의) 우리 아버지', '제비집', '닭 볏' 같은. 책에서 글로만 보았기에 맛은 물론 모양도 어떤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몇 가지 파스타를 직접 만들었다. 스파게티 면에 크림소스나 토마토소스를 더한 '국민 파스타' 말고 내 나름으론 색다른 면과 소스로 시도를 해본 것이다. 파스타를 통해 이탈리아를 맛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파스타 자체를 여행하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기대치에 못 미치는 맛도 나왔다. 그럴 때 나는 아내에게 "원래 명품이란 뛰어난 게 아니라 남다른 것" 이라며 맛있다고 평가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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