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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늙어서

by 장돌뱅이. 2024. 12. 23.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누구에게나 귀찮은 연례행사다.
특히 그놈의 내시경을 위해 마셔야 하는 관장약은 질색이다.
금식도 힘이 드는데 그거라도 좀 맛난 수프처럼 만들 수는 없는 것인지.

나이가 들면서는 귀찮음에 한가지가 더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몸 어딘가에 숨어있는 질병이 검진에 포착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은근한 걱정이 그것이다. '늙어 생기는 모든 비정상은 정상'이라고 말하는 송년회 자리의 호기는  시력, 청력, 혈압, 엑스레이, 내시경을 거치면서 점점 수그러든다. 

석달에 한번 혈압을 재고 약을 처방해주던

담당의가 여의사로 바뀌자 질문도 달라졌다
의사가 물었다 혈압약 말고 무슨 약을 먹냐고

오메가 쓰리요
또?
비타민 씨요
또?
제텐 씨요
아연 아니에요? 그건 왜 먹지요?
······그냥요

나는 괜히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자신에게 물었다

왜 먹었지?

- 정희성, 「질문」-

"위염이 약간 있지만 걱정하실 정도 아니에요. 그 연세엔 대개 그래요."
'늙어서'라는 의사의 말은 위안이 되지만  따지고보면 대책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연세에 대개 있는 일'이 앞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늘어나지 않으면 끝일 터이니
······

검진기관에서 검진 후 죽을 제공했다.
만 이틀만에 만나는 간이 들어간 음식과 반찬에 입맛이 돌았다.
참았던 커피도 바로 한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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