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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방콕2023 - 송크란'전투' 2일차

by 장돌뱅이. 2023. 4. 17.

아침 산책과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다 점심 무렵 아이콘시암(ICONSIAM)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강변도로를 따라 불과 200미터 떨어진 '파 아팃(Phra Arthit)'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원래는 차오프라야 투어리스트 보트(Chao Phraya Tourist Boat)를 탈 생각이었다.  
이름처럼 주요 관광지에 가까운 10곳 선착장만 경유하여 이동시간이 빠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종점인 Sathorn 선착장까지 30바트)은 일반 보트(16바트)에 비해 비싸다. 

하지만 선착장에 가니 때마침  먼저 도착한 주황색 깃발의 보트가 막 출발할 태세여서 그냥 올라탔다. 주황색 보트는 방콕시민들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라  많은 선착장을 들리는 대신 운행 주기가 짧은 장점이 있다. 급한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닌 우리로서는 아무 배편이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운항을 돕는 보조인은 선착장에 배를 대거나 출발을 시킬 때 바쁘게 움직이며 연신 호루라기를 불었다.
마치 우리의 7080시절 버스 차장이 '스톱'과 '오라이'를 반복하며 버스 기사와 소통을 했던 것처럼 배의 운전에 대하여 호루라기 소리로 선장과 교신을 하는 것 같았다.

배가 지나는 강의 좌우로 왕궁이나 왓아룬 등의 유명 관광지나 쉐라톤, 힐튼, 페닌슐라 같은 대형 호텔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배와 함께 강물에 유유자적 흔들리며 오른쪽·왼쪽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아이콘시암에 도착했다. 

아이콘시암은 규모가 엄청나게 큰 쇼핑몰이다. 일설에 의하면 면적은 축구장 몇십 배이고 방문객이 하루 평균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쉬엄쉬엄  Mall 구경을 하며  손자들 선물도 사고 군것질도 하고 강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멍도 때리면서 저녁 때까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아이콘시암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카오채(Khao Chae)를 먹으러 갔다.
카오채는 태국의 전통 여름 음식이다. 카오(쌀 또는 밥) + 채(물에 담그다)는 이름처럼 자스민 같은 꽃의 향기를 우려낸 찬(얼음) 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나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여러 전통 음식을 곁들인다. 간 돼지고기를 채운 고추 튀김, 말린 돼지고기 채, 중국식 무말랭이 등이라고 한다. 

태국 궁중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카오채는 가장 더운 계절인 4, 5, 6월 정도에만 나온다. 계절과 상관없이  카오채를 만드는 식당도 있다고 하지만 일부러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아이콘시암에서는 식당 "S&P"와 "나라 NARA"에서  카오채를 낸다고 알고 았는데(정확하진 않다) 먼저 눈에 띄는 "S&P"로 들어갔다.

궁금증을 못 참아 서둘러 물에 말아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은은한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물에 만 밥이 튀김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아내는 깔끔한 맛은 인정하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먹다 보니 우리나라 냉수에 만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이나 보리굴비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과 비슷한 방식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차에 밥 말아먹는 일본의 '오차즈케'도 떠올랐다.

제철인 두리안. 놓칠 수 없어 아이콘시암 내 쑥(SOOK)시암에서 한 조각을 사서 먹었다. 직원에게 잘 익은 걸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눌러서 탄력을 검사한 끝에 하나를 골라준다. 찐득하면서도 고소하게 맛있다. 아내는 왜 이런 걸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살 때 많이 먹지 않았을까 하며 30년 전 일을 후회한다. 가장 무섭고 쓸모없는 게 후회다. 지금이라도 많이 먹자. 여행 중 '일일 일 두리안' 하기로 의기투합해 본다. 

아이콘시암은 아내와 내겐 너무 크고 복잡한 곳이었다. 송크란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몰려서 그랬는지 특히 수상시장을 컨셉으로 태국 77개 지역의 특산물을 모았다는 푸드코트 쑥 시암(Sook Siam)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결국 람부탄 한 봉지를 사고는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쑥 시암 풍경

숙소로 돌아와 우리의 놀이터 수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멀리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불빛이 살아날 때까지 있다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수영장과 붙어있는 식당 야외좌석에서 식사를 했다.
직원이 드레스코드와 무관하다고 반겨주었다.

식사 때마다 디저트로 빼놓을 수 없는  카오니아우 마무앙(망고찰밥).
만약에 태국음식 중에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그럴 이유는 없지만) 나는 아마도 오랜 고민 끝에 망고찰밥을 고를 것 같다. 찰밥은 그냥 찰밥이 아니라 코코넛밀크에 소금과 설탕을 넣고 조린 것이다. 밥만 먹어도 맛있는데 맛난 과일 망고까지 곁들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한 번 더 물을 적셨다.

그리고 2일 차 송크란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혼자 밖으로 나왔다. 
어제와는 달리 '적'들은 월등한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거의 물대포 수준의 압도적인 '화력(수력?)'으로 무장하고 요소마다 포진하여 무차별적으로 쏘아댔다. 게다가  오토바이, 툭툭, 트럭 등 기동력까지 갖춘 채로 곳곳을 누비는 '적'들도 있었다. 그들은 큰길을 달려 지나가면서 길가의 사람들을 향해 기습적으로 물줄기를 쏘아댄 뒤 재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많은 '적'들이 얼굴에 행운을 부르는 흰색으로 회칠을 하여 기괴한 모습이었다. 

영화 속 람보처럼 화려한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는 결국 큰길을 버리고 이면도로로 들어서야 했다. 그곳에도 전투는 있었지만 아주 작고 산발적이어서 견딜만했고 오히려 아기자기한 재미가 더 있었다. 맹렬하게 물을 퍼붓는 어린 '적'들도 출현했다. 친근하다는 뜻으로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물 한 바가지를 제대로 맞기도 했다.

*이상 배경음악 : 브금대통령 Track : Hello 2021 / https://youtu.be/VxXgi6bEpwY

언젠가 우리나라 서울 신촌에서 물싸움 축제를 벌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왠지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FESTIVAL"의 어원이 행복과 즐거움의 의미하는 라틴어 "FESTUS"라지만 축제는 단순한 행복과 즐거움 이상의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테면   평소에는 특별히 주목받을 수 없거나 숨겨진 삶의 한 부분이 놀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환상이지만 끝내는 일상을 돌아보고 끌어안게 하는 신명 같은 ······

이 거대한 들썩임의 송크란은 신촌의 물싸움과는 또 얼마나 다른 것일까?
온몸이 흥건히 젖은 채  길바닥에 흥건히 넘치는 물과 뽀얀 석회를 보며 숙소로 돌아오는데 누군가 얼음물을 등에 끼얹는 바람에 잡생각에서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해피 송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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