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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방콕2023 - 행복하라

by 장돌뱅이. 2023. 4. 19.

송크란 마지막 날. 간밤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의 풍경이 궁금해서 이른 아침에 람부뜨리 로드를 지나 카오산까지 걸어가 보았다. 예상외로 거리는 깔끔했고 조용했다. 물론 거리 곳곳에 서 있는 쓰레기차와  그 앞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인 듯했다. 

람부뜨리 로드

카오산에 들어서자 밤새 이어진 술자리를 아직 파하지 못한(혹은 새롭게 판을 벌인) 사람들이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요란스레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다간 갑자기 자기들끼리 물총을 난사하며 예의 그 비명과 웃음을 터뜨렸다. 숙소로 돌아와 사진과 함께 거리 상황을 설명해 주자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무슨 종군기자 같다고 웃었다.

카오산로드

'종군기자'의 상황 브리핑을 끝내고 아내와 파쑤멘 요새까지 걷는 산책을 나섰다.
왜 그런지 요새를 둘러싸고 서있는 우람한 나무들의 초록이 유독 싱싱하게 느껴졌다. 

어제 사지 못한 손자들 선물을 사기 위해서 투어리스트 보트를 타고 사톤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지상철 BTS로 갈아타고 쇼핑몰 시암파라곤(Siam Paragon)으로 갈 생각이었다.

배는 어제 주황색 보트와 같은 경로를 따라 강을 내려갔다.
투어리스트 보트는 지붕에 좌석을 설치하여 360도로 탁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튼튼한 다리와 황금빛 화려한 사원과 왕궁, 우뚝한 왓아룬 등 이름난 곳을 지나면  하류로 갈수록 강 좌우로 높다란 현대식 건물들이 나타난다. 대부분 힐튼, 페닌슐라, 쉐라톤, 샹그릴라, 만다린오리엔탈 같은 고급 호텔들이다. 그 사이에 옛날 책에서 배우던 수상가옥들이 숨은 그림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쇄락한 모습은 아직 남아있다거나 아니면 '겨우(?)' 존재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Blue Sky 

시암파라곤도 복잡하기는 매 일반이었지만 어제의 아이콘시암만큼은 아니었다.
손자들 선물사기는 여행 중 아내와 내가 즐기는 중요한 놀이이고 일정이다. 주로 옷을 산다. 손자들의 체격과 생김새를 옷과 비교·상상하는 시간은 즐겁다. 꼼꼼한 아내는 행여 너무 작거나 큰 걸 사게 될까 봐 손자의 티셔츠 하나를 샘플로 가져와 비교를 해가며 골랐다. 어린 딸아이의 선물을 사던 곳에서 이젠 손자들의 선물을 산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시암파라곤 지하 식당가에 있는 "딸링쁠링"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내와 나는 이곳의 얌운센(당면샐러드)을  특히 좋아한다. 그 외에  카오팟(볶음밥), 까이호빠이터이(바나나잎에 싸서 구운 닭고기)를 땡모빤(수박쥬스)와 함께 먹었다. 후식으로는 늘 먹는 망고찹쌀밥(카오니아우마무앙)을 시켰다.

카오팟
까이호빠이터이
얌운센
카오니아우마무앙

식사 후 아내는 식품코너에서 태국요리용 소스와 주전부리  몇 가지를 샀다.
꼭 무언가를 산다는 의미보다는 구경에 방점을 둔 시간이었다.

일일 일 두리안!
늘 느끼는 바이지만 내 집이 있을 리 없는 여행자로서 두리안은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 과일이다. 서서 먹기는 좀 그렇고 해서 할 수 없이  숙소까지 가져와 호텔매니저에게 '자수'를 했다. 그는 다른 손님들이 냄새를 싫어할 수 있으니 수영장 한쪽에서 먹으라고 자리를 정해 주었다. 부엌데기 구석에서 때 지난 밥 먹듯 했지만 맛은 변함없이 좋았다.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인 수영. 그리고 저녁식사.
까이텃(닭튀김), 솜땀(파파야샐러드), 팟까파오 무 랏카오(돼지고기바직볶음덮밥), (바묵능마나오(오징어라임수프)로 했다. 한참 부족한 태국음식의 맛은  리바수르야 호텔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솜땀
팟까파오 무 랏카오
바묵능마나오

이날 후식은 방에서 하루 전 아이콘시암에서 사 온 람부탄으로 했다.
동남아에 올 때마다 놓칠 수 없는 뽀얀 속살의 달콤한 맛!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송크란 '전투'의 저녁. 게다가 토요일!
예상은 했지만 람부뜨리 로드를 지나 카오산으로 가는 차크라봉세(Chakrabongse) 로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을 정도였다. 인파 사이에 물을 맞으며 서있자니 문득 작년 이태원의 비극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갔던 길을 거꾸로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키니 차림의 미인계(?)로 시선을 끌어 '복'(물)을 자청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차크라봉세 로드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나의 영웅, 토요일 - https://youtu.be/xF24-bol1T4

누구나 얼마큼은 흰 도화지를 넘기는 듯한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을 품고 산다. 때로는 어두운 순간을 지나기도 한다.  많고 많은 날, 한 사흘쯤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오직 물에  젖는 일 하나로 웃고 떠들고 춤추며 보내도 좋으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행복하라고.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조그맣거나 거대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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