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태국

방콕2023 - 송크란 시작되다

by 장돌뱅이. 2023. 4. 14.

호텔 로비에서는 송크란 음악이 쉬지 않고 나온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짧은 소개 영상이 있다.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강변을 산책했다. 호텔이 짜오프라야 강과 붙어 있어 수영장 옆길로 나가면 바로 강변이 나왔다. 강변 산책로는  1km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짧지만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파쑤멘 요새(Phra Sumen Fort)로 걸어가는 방향인 강 상류 쪽으로 라마8세의 다리가 보이고 하류 쪽으로는 멀리 삔끌라오 다리가 보였다. 낮이 되면 오고 가는 배들로 부산스러울 강은 텅 빈 채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수면은 잔잔했고 덩달아 마음도 평화로웠다.

산책의 반환점에 있는 파쑤멘 요새는 18세기에 차오프라야 강 동쪽에 있는 수도를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파쑤멘 요새는 싼띠차이 쁘라깐이라는 작은 공원과 붙어 있다. 흔히들 파쑤멘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공원 안에 있는 "싼띠차이 쁘라깐 저택(?)"
파쑤멘 요새

호텔로 돌아오니 그 사이 아내는 잠이 깨어 있었다. 산책로와 요새를 설명해주고 함께 걷자고 하여 같은 길을 한 번 더 돌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장으로 나가 자리를 잡으니 여러 명의 스님이 호텔 안으로 들어온다. 송크란 행사를 위해서라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수영장 옆쪽 공간에서 꽤 오랫동안 진지한 분위기의 행사가 이어졌다. 수영을 해도 되냐고 물으니 상관없다고 한다.

수영장에서 늘어지기는 동남아 여행을 할 때마다 아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다.
의자에 허리를 피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시간이 감미롭다. 이럴 때 시간은 천천히 간다.
"그래 사는 게 뭐 있어" 하는 자못 인생을 달관한 듯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나른하게 있어도 배를 채워야 시간도 흐른다.
숙소 앞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꾼댕 꾸어이짭 유안"이라는 길고 복잡한 이름의 식당에서 국수와 뽀삐야텃을 먹었다. 아내는 어제 갔던 "나이쏘이"보다 이곳의 맛을 더 쳐주었다. 에어컨이 없어 한낮의 더위를 선풍기로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느껴졌지만 잠시 후 카오산으로 나가 물에 홀딱 젖을 것을 상상하며 먹었다. 가격은 매우 저렴하여 국수 두 그릇과 튀김 그리고 콜라까지 먹었음에도 한국돈 만원에 못 미쳤다. 식당에 에어컨 없는 것을 주인의 인색함 때문이라고 비난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숙소에 남기로 하고 나는 송크란 '전쟁터'로 갔다.
람부뜨리 골목을 접어드는 순간부터 최신식 물총으로 무장한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가해자'이고 동시에 '피해자'며, 침략군이고 방위군이었다. 아니 '피해'를 당하고 '침략'을 당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송크란 축제에선 최선의 공격은 수비가 아니라 무(無)수비였다. 차도는 통제되고 있었고 카오산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밀도는 높아졌다. 소음도 커졌다. 가끔씩 얼음물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전장이었다. 비명과 웃음이 한 덩어리로 어울려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었다.

송크란 주의 사항에는 방수팩으로 전자기기와 지폐를 보호할 것, 버려도 되는 옷 입기, 물총은 축제 이전에 준비하기(현장 구매는 비싸다고) 등이 있다. 단 스님에게는 물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최소한의 현금을 비닐 봉지에 싸서 넣고 방수카메라만 들고 나갔다.  

1차 전투(?)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내도 '전사'가 되라고 부추겼다.
깨끗하게 씻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내는 나의 부추김을 못내 미심쩍어하면서도 따라나섰다.
전투에는 '보급투쟁'이 최우선이므로 출출해진 배를 "카림 로띠 마타바(Karim Roti Mataba)"에서 연유를 친 로띠로 살짝 달랬다. 그리고 씩씩하게  아우성 속으로 향했다. 

나는 옛 노래로 아내의 참전에 용기를 북돋워 불러주었다.

♬노래 부르세 즐거운 노래.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내일은 전선 멀리 떠나갈 이 밤을 노래 부르세···

전투를 마치고 저녁 식사는 어제와 같은 "마담 무써"에서 했다. 다른 곳으로 갈까 하다가 어제 저녁 남자 직원의 친절에 다시 찾게 되었다. 어떤 '불한당'들은 도로 쪽에 앉은 손님들과 무슨 사이인지 식당까지 쫓아와 한바탕 격렬한 물총싸움을 벌이던 끝에 커다란 물통을 들이붓고 웃으며 떠나기도 했다. 

우리는 태국 여행을 오면 빼놓을 수 없는 솜땀과 팍붕파이댕에 태국식 순대인 싸이우와를 주문했다.
솜땀과 팍붕을 평범했지만 송크란이란 분위기를 더해 먹었다. 땡모빤과 레오 맥주의 맛도 더했다.
처음 먹어본 싸이우와는 인상적이었다. 

"지루하더라도 내가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처럼 치사하고 고귀하며 흥미로운 우연을 나는 모르므로."
최영미 시인의 글이었다.

아내와 내게 여행은 '지루하고 흥미로우며 고귀하고 때로는 치사하기'도 한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모험이다. 도착 첫날 나와 아내에게 얼음물을 안긴 범인을 응징하지 못했으므로 내일도 또 '카오산 전투'에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그렇다.

'여행과 사진 > 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콕2023 - 행복하라  (0) 2023.04.19
방콕2023 - 송크란'전투' 2일차  (0) 2023.04.17
방콕2023 - 송크란 전야  (4) 2023.04.13
'드디어' 방콕에 가다 9(끝)  (0) 2022.07.08
'드디어' 방콕에 가다 8  (0) 2022.07.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