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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한명숙 선생님 따라하기

by 장돌뱅이. 2023. 12. 2.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의 주인공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라고 말한다. 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통하여 그에게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운을 얻는 장소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부엌을 좋아한다. 하루에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연히
매일매일 세 끼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손자저하와 딸아이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씻고 닦고, 깍둑썰기 반달썰기 어슷썰기 나박썰기를 구분하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끓이고 볶고 삶고 졸이며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게 역동적이면서도 따듯하고 고즈넉하다. 다른 어떤 일보다 정신을 집중하여 빠져들게 한다.

부엌에 서지 않았다면 은퇴 후 백수의 생활은 지금보다 단조롭고 무료했을 것이다.
은퇴 전 회사일로 미국에 주재할 때 처음 인터넷과 책을 보며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국 후 딸아이가 결혼을 한 후 아내와 둘이 살면서부터 나는 부엌을
온전히 나의 영역으로 접수(?)했다.

'접수'는 했지만 요리 실력이 미흡했다. 다행히 2019년 <<노노스쿨>>이란 곳에 입학하여  한명숙선생님으로부터 조리 이론과 실습을 지도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시고 책도 여러 권 내신 전문 강사였다. 1년 가까이 주 1회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요리를 반드시 집에서 복습하였는데 그것은 지금 내가 부엌일을 하는 밑천이 되었다. 아내는 선생님에게 배운 대부분의 음식을 좋아하지만 특히 해물잡채, 가지깨소스무침, 꽃게탕, 삼색 해물 수제비, 봄동 겉절이, 탕평채 등을 좋아한다.

작년에 한명숙 선생님은  유튜브를 열었다. 
(https://www.youtube.com/@user-eh6yl7ky7d)

요리연구가 한명숙 한스쿠킹

안녕하세요. 요리연구가 한명숙 입니다. 한스쿠킹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0년의 세월이 넘도록 요리연구하고 대학과 직업학교, 백화점문화센터 등의 요리강의, EBS 최고의 요리비결, KBS

www.youtube.com

한명숙 선생님 레시피의 장점은 아주 일반적인 재료와 소스로 특별한 맛의 음식을 만드는 데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몇 가지 레시피를 따라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역시 아내의 만족도는 높았다.

감자조림(원래는 잔멸치를 넣어야 했는데 없어서 당근과 함께 졸였다.)
애호박마른새우볶음
김자반
명란두부찌개

음식의 맛은 혀만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때와 장소, 함께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사람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이다.

뒤뜰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놓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쪽을 예쁘게 깎아 내셨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쪽을 받아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히 드러난 아버지 이마에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 임길택, 「저녁 한때」 -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내가 내는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도마질 소리'도 집안 곳곳을 가만히 감쌌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와 나누는 음식이 시(詩) 속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건넨 무 한쪽처럼 하루의 고단함을 가만히 토닥이는 위로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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