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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메밀꽃과 메밀묵

by 장돌뱅이. 2012. 6. 7.

메밀은 묵과 꽃의 두 가지로 연상된다. 내 기억 속에는 메밀묵이 먼저이다.
어릴 적 늦가을이면 어머니는 여러 개의 커다란 ‘다라이’에 가득가득 메밀묵을 만들어 온 동네 집집마다 한 그릇씩 돌리곤 했다.
나도 가끔 메밀묵 배달 심부름에 나섰
지만 묵은 당시의 내게 친근한 음식이 아니었다.

무덤덤하면서도 약간 쌉싸름한 맛에다가 미끌미끌하고 물컹쿨컹감촉이 당최 내 입맛과 맞질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밥상에 찬으로 오를 때는 물론이고 늦은 가을밤에 속이 출출할 때 어머니가 양념장을 둘러 손수 내오시던
메밀묵에 손사래를 치거나 아예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리곤 했다.

요즈음은 건강식이니 웰빙 음식이니 하며 그런 종류의 천연 음식들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여행길에 가끔 아내와 나도 돈을 주고 메밀묵을 사 먹는다.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정갈하고 사랑이 듬뿍 담겼을 어머니의 메밀묵에는 고개를 돌리다가
그것이 귀해지고 나서야 그 가치와 맛을 찾는 우둔함.

나의 웰빙이란 게 그렇게 허약하고 얄팍할 때가 종종 있다.

봄철엔 넓은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은 초가을엔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 메밀꽃으로 가득해진다.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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