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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관악산

by 장돌뱅이. 2024. 11. 17.

코로나가 지나 간 이후 여행은 물론 산행에도 '오래간만'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관악산도 그렇다. 가장 최근에 언제 올랐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내도 체력이 괜찮을 때는 함께 올랐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아내는 높낮이의 변화가 없는 평지를 오래 걷거나 산자락에 붙은 무장애 길을 걷는다.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날이다.
등산이 그중 하나다.
북한산 숨은벽과 관악산을 두고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 아내가 친구와 만나는 장소에서 가까운 관악산을 오르기로 했다. 

지하철 신림선 관악산역에서 나오면 바로 관악산 들머리다.
신림선은 2022년 5월에 개통된 따끈따끈한(?) 경전철이다.

여의도 샛강역에서 관악산역까지 11개 역을 운행한다.

'관악산공원'이란 현판을 단 대문을 지나면서 시작한 단풍 행렬은 계곡을 따라 산 중턱까지 이어졌다.
아름답다!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겠는가.
화사한 빛깔을 담아두기 위해 핸드폰을 자주 꺼내 들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도종환, 「단풍 드는 날」-   

시(詩)는 특히 나같은 늙은이가 지녀야 할 덕담이자 잠언 같다. 
늙는다는 것은 몸의 어딘가가 불편해지는 일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변화와 한계를 혼자만 겪는 것인 양, 아니면 혼자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양 유난스레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추해 보인다.
늙어(?) '황홀한 빛깔로'  물드는 단풍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할 일이다.

산중턱을 지나 길이 가팔라지면서 시나브로 단풍이 사라지고 나무들은 빈 가지를 허공에 뻗고 있다.
나무는 초록도 단풍도 아름답지만 헐벗어도 아름답다.
땅에 뿌리 박고 당당하게 선 맨 몸에 모진 겨울을 견디겠다는 꿋꿋한 의지가 서려있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호수공원-제4쉼터-연주약수터-연주대-정상에 오르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 내려왔다.
올라가는데 2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관악산은 오르기에  만만한 산이었는데 이제 등산로가 더 좋아졌음에도 예전보다 힘이 들었다.
내가 변한, 늙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이성부의 시인의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넉넉함 내가 나에게 보태는 큰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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