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니님과는 십여 년 전쯤 여행 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다.
인연이 되느라 그랬는지 미국에서 지낼 때 야니님 부부가 1년쯤 이웃 마을에서 살다 가기도 했다.
둘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걷고 순댓국(돼지국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눈다. 아직 현직에 있는 그가 비싼 순댓국을 사고 상대적으로 싼 커피는 백수인 내가 내는 게 게임(?)의 법칙이다.
걷기, 순댓국, 커피, 잡담 중 어느 게 중심인지 모른다. 다 중요하다.
그는 유명 커피체인점보다는 동네커피숍을 좋아한다.
그는 매번 만날 때마다 주변 조사를 세밀하게 해 온다. 걷는 코스와 식당, 커피점까지.
이번에는 특히 그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잠실나루역에서 만났기에 더욱 그랬다. 그가 만든 일정에 따라 잠실나루역 - 아산병원 주변 둑길 - 풍남토성 - 순댓국 - 커피 - 강변길 - 잠실나루역을 돌았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지만 걸어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라 걷기에 최상이었다.
늦더위가 있어서인지 코스모스가 한창인 곳도 있었다.
풍납토성 근처 영남순대국은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오후 2시 경에 들어간 우리를 마지막으로 하루치로 준비해 온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보통의 순대국의 국물이 걸쭉한 사골 육수인데 반해 이곳은 고기 육수처럼 투명했다.
그 때문에 내가좋아하는 들깨가루를 넣지 않는다고 주인장은 설명했다.
입안에 무게감을 남기는 묵직함 대신에 가볍지만 은근한 여운을 남기는 깔끔한 맛이었다.
커피숍을 나와서는 한강 가까이 내려가 걸었다. 강변길에는 서쪽으로 기우는 햇빛을 받아 솜처럼 하얗게 빛나는 억새 무리가 있는가 하면, 요즈음은 보기 힘든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서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 흔하던 미루나무가 왜 요새는 보기 힘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잠시 어린 시절의 동요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실바람이 몰고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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