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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이른봄의 하루

by 장돌뱅이. 2025. 3. 15.

도다리쑥국.
도다리와 해쑥의 은근한 맛이 옅게 푼 된장 국물에 스며들어 입안을 '햇봄'으로 채운다.
함께 먹는 멍게비빔밥도 여느 때보다 강렬한 봄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매해 봄마다 도다리쑥국을 먹으면서 도다리가 가장 맛있는 철이 봄인 걸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라고 한다. 도다리는 겨울철에 산란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3~4월에는 살이 물러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횟감으로 쓸 수 없는 도다리에 쑥을 더하여 국을 끓이는 경남 통영사람들의 세밀한 지혜와 입맛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내와 을지로입구 충무집에서 예년과 똑같은 사진을 찍으며 똑같은 맛의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딜쿠샤 (Dilkusha)라는 생소한 이름의 건물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열리는 어반스케치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올해 11월 23일까지 기획전 ‘기쁜 마음을 그리다’가 열린다. 애초에 나는 서울 시내 곳곳을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갔으나 이번 전시는 딜쿠샤 건물의 내·외부 모습이 주제였다.

어반스케치는 '도시(Urban)+스케치(Sketch)'가 합쳐진 말이다.
다양한 도구와 재료들을 사용하여, 말 그대로 '도시를 그리는 것'이다.
물론 도시뿐만 아니라 모든 장소에서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빠르게 그려내는 그림을 말한다.  

어반스케치의 생명은 현장성이다. 나중에 사진 등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그려서(On-location sketching) 그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딜쿠샤는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인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부인 메리 테일러(Mary Taylor)와 함께 살던 집으로 ‘앨버트 테일러 가옥’이라고도 부른다.
딜쿠샤는 페르시아 어로 '기쁜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는 1924년 딜쿠샤를 짓고 1942년 추방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앨버트 테일러는 조선에서 광산업과 무역업을 하던 기업가이자 AP통신원으로도 활동하며 1919년 3·1 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외국으로 보내고, 일본군이 수원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을 취재하는 한편, 일본 총독을 찾아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일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으며 1941년 자택 감금되었다가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테일러는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이후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되었다.

딜쿠샤는 2017년에 등록문화재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로 등록되었고 2년 간의 복원 공사 끝에 2020년 12월에 완료를 하였다. 내부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살던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을 하였고 나머지 공간  테일러 부부가 한국에서 생활하던 모습과 앨버트 W. 테일러의 언론활동을 주제로 한 전시실로 조성하여 2021년 3월 1일에 개관하였다.

딜쿠샤를 나와 카페에 들러 커피와 달달한 후식을 먹었다.
은은한 봄향기가 담긴 음식과 조용한 딜쿠샤까지 한가롭고 맛깔스러운 하루였고 산책이었다.  
포근하고 바람 없는 날씨도 걸음을 느릿하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  정완영,「초봄」-

시장에서 햇김치를 담글 재료를 사서 올 때 아파트 입구에서 아내가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화단의 산수유가 노란 파스텔 톤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에 나갈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곁에 목련꽃 몽오리도 어느새 도톰해져 있었다.

'유별나게' 그래도 맹렬하게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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