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인연을 떠나 일상의 든든한 '빽'이신 수녀님께서 직접 농사를 지은 햇감자를 보내주셨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정갈하게 흙을 털어내고 말린 보라색 감자와 흰감자 두 종류가 들어 있었다. 감자 외에 상추도 두 종류였다. 양잿물도 마신다는 공짜라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자를 보냈다. "수녀님, 이거 로또 당첨 맞죠?"
곧바로 감자를 다져 넣은 강된장을 만들어 상추와 함께 쌈밥을 만들어 먹었다. 쪄서 먹으면 좋다고 수녀님이 알려주신 보라색 감자는 그다음 끼니로 했다. 말씀하신 대로 포슬포슬한 식감과 구수한 맛이 그만이었다.
음식의 맛은 복합적이다. 그것은 원재료의 성장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 "과일은 그것을 사 먹는 사람이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하여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참다운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월든(Walden)』에 썼다.
소금도 없이 아내와 함께먹은 감자의 맛에는 봄부터 밭을 고르고 씨눈을 심으셨을 수녀님(들)의 노동과, 미국에서 만난 이래 우리나라 농촌과 동남아의 가난한 오지 등을 거칠 것 없이 다니신 수녀님의 '용감무쌍', 다정다감, 유쾌함에 더하여 순명의 겸허함과 겸손함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반 고흐, <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
고흐는 희미한 등불 아래 둘러 앉아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림 속 사람들의 옷차림은 허름하고 생김새는 투박하면서도 선량해 보인다.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에 마디진 손가락은 노동으로 단련된 그들의 이력을 나타내는 것 같다.
저녁식사 자리인 것 같은데 식사 후에도 할 일이 더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허기때문에 서두르게 된 것일까? 아직 모자도 벗지 않은 상태다.
힘든 하루의 노동 끝에 감자 몇 알은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침울하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결핍보다는 넉넉함과 따뜻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살아왔다는 듯 조용하게 이야기와 차를 나누고 다른 사람을 위해 감자의 껍질을 벗겨주기도 한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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