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선)의 단순화는 근래에 아내와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여행의 형식이자 내용이다. 재작년 연말 아내와 카메라를 두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카메라 없는 여행은 어떨까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딸아이의 애교 있는 충고가 있기도 했다.
예상보다 효과는 컸다. 겨우 카메라 가방 하나가 줄었을 뿐인데
우선 짐이 굉장히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카메라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다 보니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더불어 여행은 매우 한가하고 시간은 헐렁해졌다.
굉장한 다이어트라도 성공한 듯 가벼웠다. 사진을 찍던 시간이
아내와 나누는 대화나 서로 공유하는 침묵의 공감대로 채워졌다.
대화는 길어졌다. 세밀해졌다. 뷰파인더를 통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보는 여행지와 그 속에 서있는 아내의 모습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여행에서 중요한 기록 도구 중의 하나인 카메라를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카메라나 사진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느낀 여행이었다.
그 이후 여행에서 나는 여전히 카메라를 포기하지 못했다.
다만 무거운 DSLR 보다 가벼운 ‘똑딱이’로, 나아가 아예 핸드폰으로
대신하고 있다. 거창한 예술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고, 그럴 지식과
솜씨도 지니지 못한 터에 굳이 과용량의 카메라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최근의 방콕여행에는 손안에 쥐어지는 작은 쏘니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
몇 해 전 딸아이에게 선물로 사주었던 구형 모델이다.
그리고 예전보다 사진을 찍는 횟수도 많이 줄이게 되었다.
의식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사진보다 여행 자체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으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남는 것이 꼭 사진만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 것이다.
새롭고 먼 곳만을 찾는 여행에 대한 욕심을 줄이자고
아내와 자주 이야기 하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터에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끝없는 탐닉은 무모한 ‘소모전’이라는 생각에 서로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내와 나의 마음속에서 먼 곳에 대한 설렘과 갈망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러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다만 카메라와 사진의 비중을 줄이려는 여행처럼, 나와 가깝게 있어
매일 접할 수 있는 곳에 대해 좀 더 살갑게 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즈음 들어 아내와 집 주변 가까운 곳을 걷는 산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보는, ‘짧고 단순한 동선’으로 만드는 여행의 전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동의 과정과 목적지가 같은데서 오는 한가로운 발걸음.
오고가며 마주치는 사람, 남의 집 뜰에 핀 꽃무더기,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카페에서 해지는 노을을 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쉽고 평범하고 단순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들은 생각을 바꾸니 신선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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