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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그해 겨울 선정릉

by 장돌뱅이. 2013. 2. 16.

몇 해 전 겨울.
그러니까 사무실이 청담동에 있을 때,
일을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으로
눈이 하얗게 오고 있었다.
하늘에 있으면 별
내라면 눈이라고 했던가.
우수수 우수수
별들이 무수히 흩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나는 급히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지하철 타고 선릉으로 나와."
퇴근 시간을 좀 앞당겨 아내가 올 시간에
맞춰 선릉으로 갔다.

그 사이 눈은 그쳤지만 나무가지와 능에는
하얀 눈이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눈이 녹기 전의 그런 풍경을 아내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숲 사이로 난 눈길엔 앞서간 발자국들이 벌써 어지러히 찍혀 있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처럼 중간중간 발자국으로 동그란 꽃모양을 만들며 걸었다.
헐벗은 겨울 나무가지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녔다.
선정릉에는 10여 종의 새가 산다고 했다.
고개를 들면 아득한 높이의 담장으로 하늘을 가린 빌딩 사이에
섬처럼 남아 있는 이 자그마한 숲이 거두는 생명들이 경이롭고 고마웠다.

선정릉이 누구누구의 무덤인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신 훗날 그들처럼 어느 곳엔가 누워
그때 왜 우리가 그곳을,
혹은 그 시간을 무심히 지나쳤던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고 싶었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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