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아내와 나는 걷는다

by 장돌뱅이. 2013. 2. 20.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내와 토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을 즐기다가 작은 배낭을 꾸렸다.
사실 물병 두 개를 넣은 것뿐이니 ‘꾸렸다’는 표현은 좀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표는 집에서 차로 30 분 정도 떨어져있는 포웨이 POWAY CITY 근처의 블루스카이 트레일.
숲 사이로 난 길과 햇볕에 드러난 길이 반반씩인 왕복 2시간 반 정도의 짧은 코스다.

아내와 함께 걷기를 하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올 2월 MISSION TRAIL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론 아내가 한국에 가 있어서 몇 번인가를 혼자서 다녀야 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나
여행은 호젓하고 그윽하지만 아내와 둘이서 하면 오붓하고 따뜻해진다.

우리는 주말 아침에 한껏 해찰을 부려 늦어진 출발 시간을 집 가까운 동네식당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하는 것으로 보충하기로 했다. 이른 바 소문난 ‘맛집’의 식당이 아니었음에도 식당은
늦은 아침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붐볐다. 아내와 나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가끔씩
외식으로 브런치를 즐긴다. 익숙한 한식과 비교하여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브런치가 주는 느긋함
- 활기차고 약간은 들떠 보이는 식당 안에 앉아 창밖의 한가한 거리를 내다보며 마시는 커피의
맛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마치 휴양을 목적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듯한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위 사진 :양이 많아 반도 먹지 못했던 이날 아침의 브런치   

미국에서 이제까지 경험한 브런치에서 한 가지 문제는 맛이 아니라 양이다.
그것도 양이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이름난 여행지나 도심의 식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로컬 식당에서는 보통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제공한다.
일인분을 주문하여 나누어 먹어도 아내와 나로서는 충분할 정도이다.

가끔씩 이런 원칙을 잊고 무심코 각자의 접시를 주문했다가 주체할 수 없는 양 때문에
당황할 때가 있다. 이 날 아침도 그랬다. 오물렛과 팬케익을 했더니 양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팬케익을 주문했는데 기본으로 따라 나오는 것이라며 2장의 팬케익을 담은
별도의 접시를 내왔다. 원하지 않으면 토스트로 바꾸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잔반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식단 합리화를 꽤하는 식당들을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있는데 미국의 식당들도 그런 방식의 도입이 필요해 보였다. 물론 사람들은 먹다 남은 음식들을
알뜰하게 별도로 포장해서 가지고 가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 음식의 양적인 문제는 개척자의 나라라는 역사적 경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드넓은 황무지를 개척하기 위해 모든 가족이 땀 흘려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섬세한
질보다 양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음식 중에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국물을 우려낸다거나 소재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살짝 굽거나 데치는 등의 섬세한 기술보다는 대량의 음식을 빠른 시간 내에
조리하기 위해 불을 많이 사용하고 설탕이나 소금, 마요네즈나 케첩 등의 조미료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거친 효율’이 우선 했다는 말이겠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이날 브런치는 결국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
우리는 가까스로 오믈렛 한 접시만을 비웠을 뿐이고 나머지 팬케잌은 고스란히 포장을 해서
집으로 가져다두고 다시 출발을 해야 했다.

총길이 5.8마일(9.3키로미터)의 블루스카이 트레일 BLUE SKY TRAIL 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오 미터 폭의 넉넉하고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트레일 들머리는 참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이 따가운 햇빛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늘이 끝나는 중간지점부터 반환점인
라모나 RAMONA 호수까지는 오르막에다가 나무그늘이 없는 드러난 길이었다.

오래간만에 나선 길임에도 아내는 다행히 가쁜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가급적 천천히
걸을 것을 주문했다. 걷다보면 목표지점은 늘 보이는 것만큼 멀지 않다. 라모나 호수는
하늘보다 더 푸른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다리쉼을 한 뒤에 오던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앞서가는 아내의 발걸음마다 노란 흙먼지가 가만가만 풀썩였다.

걷는 일은 무덤덤한 일이다.
격렬한 몸짓이나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긴박함이 필요하지 않는 느릿한 움직임이다.
간발의 차이로 무엇인가를 놓치거나 얻을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걷는 동안 시간은 오래
우려낸 진국의 감칠맛을 내며 흘러간다. 나는 걸으며 푸른 하늘과 쨍쨍한 햇살, 투명한 바람과
흔들리는 초록의 숲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허공을 나는 새와 숲을 채우는 풀벌레들의 소리를
듣고 풀포기를 적시는 작은 시냇물의 소리도 오래도록 듣는다.
걷는 일은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 활동의 기본은 걷는 일이다. 걷는 일은 인간의 몸에 맞는 이동 능력이다.
땅을 딛고 선 다리가 제 기능을 할 때 신체의 다른 부위도 맞물려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눈이 올바르게 보고 귀는 제대로 듣게 된다. 더불어 정신은 무한의 자유로 충만해진다.
걸으면서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에 대한 나의 용서를 빌기도 한다. 행동을 결심하고
또 행동을 반성한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 일은 새로운 생각과 삶의 시원(始原)이 된다.

속도와 효율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자동차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자동차는 인간의 다리를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부품으로 전락시킨다. 마을과 마을의 체감 거리는 가깝게 하지만
관계는 멀어지게 한다. 스쳐가는 풍경과의 교감은 견고한 창으로 단절된다. 관계와 교감이
단절되었을 때 인간은 왜소해진다. ‘지옥이란 이 세상 모든 관계들이 끊어지는 삶’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이제 자동차는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넘어서서 사람의 삶의 형태를 지배하고 마을과 도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절대 권력이 되었다. 인구증가를 상회하는 자동차의 증가는 거침없이
도로를 넓히고 직선화한다. 필요 이상의 물품의 운반이 용이해지면서 거품의 소비가
가능해진다. 인간을 포함한 온갖 소중한 생명과 가치들이 그 도로 위에서 덧없이 스러진다.
거대하고 빠른 것들만 존재의 이유를 획득한다. 아내와 내가 사는 미국의 서부는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로 식구대로 자가용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지 오래다.
이것은 더 이상 번영과 풍요의 상징이 아니다.

나홀로의 결단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고 세상에 종속된 내 삶의 형태도 그렇겠지만
실행의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 돌아가면 자동차를 사지 않는 게 어떨까?”
“쉽게 될까? 벌써 20년 가까이 익숙해져 온 것인데...”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하긴 당신은 담배도 끊었으니까.”
나는 담배보다 지독한 금단현상을 예감하며 다리에 힘을 주어 한걸음을 내딛었다.

'여행과 사진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FRESNO의 꽃길  (0) 2013.03.09
샌디에고 트레일 두 곳  (0) 2013.02.26
2010 연말여행(끝) - METEOR CRATER  (0) 2013.02.15
2010 연말여행 - CANYON DE CHELLY  (0) 2013.02.14
2010 연말여행 - MONUMENT VALLEY  (0) 2013.02.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