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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FRESNO의 꽃길

by 장돌뱅이. 2013. 3. 9.

 프레즈노 FRESNO 는 위 지도에(출처 : 네이버) 보이는 바와 같이
캘리포니아의 중부 내륙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세콰이어 SEQUOIA 국립공원과 킹즈캐년 KING CANYON 국립공원을 지척에 두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면 요세미티 YOSEMITI 국립공원도 있다.
샌디에고에서는 로스엔젤레스와 베이커스필드 BAKERSFIELD를 지나
북쪽으로 350마일(560킬로미터) 정도를 가야한다. 자동차로 6시간 남짓 걸린다.

프레즈노를 포함하여 SANGER, REEDLY, FOWLER, KINGBURG 등 일대는
미국 최대의 과수원 단지로 꼽힌다. 때문에 이곳은 해마다 봄철이면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피워내는 꽃들로 뒤덮인다.
아몬드(흰꽃), 자두(흰꽃), 살구(분홍꽃), 복숭아(분홍꽃), 천도 복숭아(분홍꽃),
감귤류(흰꽃) 등의 꽃이다.

BLOSSOM TRAIL은 프레즈노에서 지정한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꽃길을 말한다.
같은 종류의 나무도 과수원의 위치나 주변 환경에 따라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르지만
대개 2월 말에 시작하여 3월 중순에 끝이 난다. 사실 작년에 이곳을 다녀오려고 했다.
봄철이면 꽃이 장관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국에 있던 아내가 미국으로 오는 시기에 맞춰
가보려고 하였더니 이미 꽃이 다 진 뒤였다. 나는 한국처럼 생각하여 막연히 4월 정도가
절정이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이번엔 2월 초부터 간간히 해당 홈페이지를 (http://www.goblossomtrail.com)
체크해보아야 했다. 드디어 2월25일 꽃소식에 “Some blossoms are now open, sunshine
and warmer temps should mean full bloom by the end of February.” 이란 글이 떴다.
‘결정적 시기’가 온 것이다. 나는 손뼉을 치며 아내에게 소식을 알렸다.

차로 가는 데다가 짧은 여행이다 보니 큰 준비가 필요하진 않았다.
TRAIL에 근접된 와이너리로 숙소 예약을 한 것 전부였다.
그 외에는 간편식과 음료 등을
준비하여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는 것이 전부였다.

프레즈노까지 가지 않아도 LA 북쪽 베이커즈필드를 지나면서부터 꽃이 만개한
과수원들이
가끔씩 창밖을 스쳐가곤 했다. 본 영화를 기대하게 하는 예고편과 같은 풍경이었다.
과수원은 프레즈노에 가까워질수록 더 자주 등장했다.

프레즈노 BLOSSOM TRAIL은 길이가 100킬로미터이다. 자동차나 자전거로 돌아보아야 한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안내판이 나온다.
길이 바뀔 때마다 안내판이 나오므로 새로운 안내판이 나올 때까지 직진을 하면 된다.
사실 트레일을 벗어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꽃이 트레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 편하게 눈에 보이는 꽃을 따라가도 좋다. 
 

이곳 과수원은 미국답게 대부분 비포장이긴 하지만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큰 (농사용) 길이 있으므로 차도를 벗어나 적절한 곳에 주차 시키고 과수원 안을 거닐면 된다.
설명 없이 꽃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반복되는 패턴 - 처음 얼마동안은 “와!” 하는 감탄으로 일관하다가
몇 시간씩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풍경에 나중에는 “그래 니들 잘났다!” 하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조금씩 지쳐가는 - 은 이번에도 같았다. 그만큼 꽃은 도처에 많이 있었다.
거대한 꽃무더기 사이에 마을이 있고 마을에는 이 풍경을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꽃은 한 해 동안 그들의 수고를 위해 나무들이 보내는 위로나 헌사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처에 오렌지밭이 혼재해 있었다. 4월이 제철이라는 오렌지는
이미 노랗게 익어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니 그것도 하나의 꽃이었다.
드물게 레몬나무 보였다.  

 

 

 

도로변에 함부로(?) 피어난 꽃들도 화려했다. 
"존재만으로 은혜가 될 수 있는 것" 중에 꽃을 빼놓을 수 없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 제 삶을 삶을 살아야 하는 생명의 가진 존재들의 맹렬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트레일을 거의 한 바퀴 돌 무렵 저정된 루트를 벗어나 예상치 않았던 곳으로 차가 들어섰다.
아마 중간 어디쯤에서 이정표를 놓쳤던 모양이다. 구태여 차를 돌릴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길이 이어진 대로 얼마쯤 더 가보기로 했다. 꽃길이 끊어지면서 길이 산쪽으로
붙는가 싶더니 오렌지 밭을 지나고 강을 건너 이어졌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맑은 강물에 팔뚝만한 송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햇풀이 자라난 초록의
산자락에는 소 떼와 염소 떼들이 평화롭게 흩어져 있었다. 어질어질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길
끝까지 부드러운 바람을 버금은 햇볕이 가득했다. 세상의 원초적 모습이 이랬을까?
한마디로 눈이 부실 뿐이었다.
 

 

 

 

 

학교를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인 세콰이어 뷰 SEQUOIA VIEW B&B로 향했다.
B & B 는 숙소와 아침을 제공하는(BED & BREAKFAST) 민박집을 말한다.
주인집은 포도밭 옆에 오렌지 나무와 흰 꽃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미시즈 데비DEBBIE와 짐 JIM이 주인이었다. 짐은 푸근한 인상에 조용한 웃음을 흘릴 뿐
별로 말이 없었고 안주인은 다변(多辯)의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엘에이 인근 오렌지 카운티에 살다가 십여 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딸아이는 출가하여 엘에이 살아 부부 둘이서 산다고 했다. 살림집 내부는 노부부의
애정을 보여주는 듯 아기자기 했고 가구들은 매끄럽게 반짝였다.
 

 

 

우리의 숙소는 살림집과 별도로 지어진 와이너리(CEDER VIEW WINERY)에 있었다.
방은 와이너리 건물 윗층에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정갈한 모습의 방에 아내는
만족해 하였다. 재작년 겨울 뉴질랜드 여행시 숙소를 유스호스텔로 잡았다가 아내와 딸의
원성을 잔뜩 들은 뒤론 숙소에 대한 아내의 반응에 눈치를 보게 된다^^.  

 

 

 

 

방문을 열고 나가 파티오 PATIO에 서면 와이너리답게 줄 지어선 포도나무들이 보였다.
그 너머로 배나무(?) 와 복숭아나무 그리고 오렌지 밭이 이어져있고 멀리 세쾨이어 국립공원의
산들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산꼭대기에는 아직 흰 눈이 완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파티오의 의자에 몸을 눕힌 채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들으며 오래도록 그 장쾌한
풍경들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아내가 음악을 끄자고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수한 새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일층 처마에 달아놓은 풍경소리가
해맑게 들려오기도 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잡아가면 저마다의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좋아하는 은희경의 소설을 읽었고 나는 옛 시를 읽었다.

   꽃그늘 속으로
  
바람이 불고
  
시간의 물방울 천천히
  
해찰하며 흘러갑니다
         
-이재무의 시, “꽃그늘” 중에서 - 

이튿날 아침 동쪽으로 난 창문에 붉은 기운을 느껴 잠에서 깨어났다.
커튼을 제끼고 내다보니 동쪽 하늘아침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내와 아침 산책을 했다. 포도나무 사이를 걸었다. 흙냄새가 향긋했다.
부지런한 새들이 벌써 일어나 그들 특유의 짤막하고 요란한 언어로 포도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안주인이 차려준 아침은 소박하지만 준수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인 내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안한 분위기고 부담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내와 내가 다소 긴장을 하며 귀를 세워야 하는
건 역시 그놈의 영어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TV연속극의 대사를  귀에 담을 수 있듯이 
상대방의 영어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주인집을 나서며 아내와 이야기 했다. 

식사를 마치고 와이너리에서 와인 한 병을 샀다. 간밤에 먹어보니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기념으로 하나쯤 갖고 있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와이너리 건물 앞에서 주인 내외와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했다. 그리고 다시 꽃길을 속으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20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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