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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엘리호 해변에서 주말 보내기

by 장돌뱅이. 2013. 3. 13.

아내가 한국에서 돌아와 점차 시차에 적응하면서 나는 창고 속에 가두어두었던 캠핑장비들을
꺼내어 점검해 보았다. 아내의 부재로 미루어두었던 캠핑을 시작해보려는 생각이었다.
여름이 가까워오도록 서늘하기만 하다, 아침저녁으론 으슬으슬한 냉기까지 느껴저,
여름이 와도 여름 같지 않던" 날씨도 때 맞추어 풀리기 시작했다. 사철 캠핑에 더없이 좋은
날씨를 지닌 이곳 샌디에고지만 바야흐로 일년 중 가장 캠핑에 적합한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만 좋은 계절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여름철 성수기 캘리포니아 이름난 해변은
대부분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아내가 좋아하는 도헤니 DOHENY 해변의 캠핑장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10월말까지 주말은커녕 주중에도 자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도헤니에서 멀지 않은 샌엘리호 스테이트비치 SAN ELIJO STATE BEACH 캠핑장에,
그것도 주말에 자리를 얻은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겠다.

샌엘리호의 캠핑장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들어서있는 미서부 해변의 무수한 캠핑장
중의 하나로 바다와 접한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다. 바다로의 접근은 목재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야하지만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일망무제의 조망이 시원스런 곳이다.
집에서 차로 30-4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장점이었다.

토요일 아침. 느긋한 출발을 했다.
체크인 타임이 오후 2시였으므로 라호야 LA JOLLA 와 델마 DEL MAR를 거쳐서 가기로 했다.
라호야는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거실의 커튼만 제치면 흰 모래의 해변과  
태평양이라는 드넓은 바다를 벽걸이 그림처럼 달고 살 수 있는  해안의 주택과 상점,
음식점들로 해서 샌디에고 지역의 부촌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라호야 해안의 절경을 한눈에 보기 위해 MOUNT SOLEDAD에 올랐다.
언덕 정상 위에는 미국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십자가 형태의 흰색 탑이 서 있다.
탑 아래에는 군인들의 흑백사진과 함께 참전 경력 등이 소개 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 등이 주요 경력이었다.

전쟁을 많이 치룬 나라라 그런지 미국에서는 곳곳에 군인에대한 예우와 배려가 유별나 보인다.
곳곳에 마련된 기념물과 공원, 그리고 건물과 도로 이름 등에 붙여진 군인들의 이름에서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혹은 정치적인 배려가 강하게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한국전쟁이란 글자에 눈이 자주 가게 된다. 우리의 국토 위에서 벌어진 동족 간의,
그리고 이방인들 사이의 전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보는 관점에 따라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화두가 되곤 한다. 동족상잔이라는 참담한 비극의 기원과 결과
에서부터 이방인들의 참전의 의미가 그렇다. 그러나 세상에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도
없다는 점에서,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전쟁과 시장'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들만의 패권주의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남도 북도 이방인들의 참전을 시혜(施惠)적으만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탑의 서쪽으로 내려와 언덕 끝에 서니 우리가  마운트 솔레다드에 오른 목표였던 라호야의 풍경이
장관으로 펼쳐져 있다. 영어판 여행 안내서에서 흔히 표현되는  "STUNNING VIEW"의 실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푸른 바다와 하늘, 나무와 집, 흰 파도와 모래가 맑은 햇살 속에서
감동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위 사진 : 델마의 거리

라호야의 북쪽으로 이웃해 있는 델마는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서울의 대치동이나 청담동을
합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름난 사립중고등학교가 있어 이른바 '학군'이 좋거나, 혹은 (라호야와
마찬가지로) 해변을 끼고 고급스런 주택과 상점, 그리고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PACIFICA라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델마프라자의 2층에 있는 이곳에서는 난간 너머로 떠있는
바다가 보인다. 부드럽기 그지 없는 식당 종업원의 태도와 퓨전스타일의 깔끔한 음식이 '과연 델마'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풍경에 취해 게으름을 피우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캠핑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섬머타임으로
한시간이나 길어진 낮시간에다가, 절기마저 하지에 가까워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었다.
캠프장 입구에 걸린 '만원'이라는 글귀가 늦게 예약을 하고서도 자리를 잡은 우리의 행운을
배가 시켜주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라도 한 양 아내에게 그 점을 강조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이트에는 RV차량이 서 있었다. 휴가철을 맞아 많은 식구들과 함께 와서 그런지
차 옆에 보조텐트를 두 세동씩 친 곳도 많았다. 우리처럼 순수하게(?) 텐트만을 친 곳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다른 곳은 장소가 오밀조밀 협소할 지경이었으나 달랑 텐트 한 동만 친 우리는
자리가 휑하게 남아돌았다.  

 

 

텐트를 세우고 잠자리를 만든 다음 해변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이곳 바다 스포츠의 주종은 서핑이다. 어느 계절이건 파도타기를 즐기기려고 바다에 몸을
담근채 부유하는 서핑족들을 볼 수 있다. 서프보드를 머리에 이거나 옆구리에 끼고 바다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싱싱해 보인다. 바다를 바라보며 직선의 해안을 기약없이 걷다보니
생각보다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구름이 드리워 해넘이를 볼 수 없었지만 빛이 사위어가며 저녁이 왔다.
식사를 마치고 불을 피웠다. 아내와 내가 캠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의자를 불가에 바짝 붙이고 일렁이는 장작불을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는 시간.
일상의 온갖 생각들이- 그리움과 반가움, 부끄러움과 자부심, 자책과 원망, 부러움과 뿌듯함 -
그 침묵의 시공간을 메우며 두서없이 피워올랐다간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양극단의 감정들이 서로를 정화하며 순해지고 평온해지기를
기다려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옛 노래를 부르곤 한다.  

가끔씩 캠핑장 가까이에 있는 철길로 심술을 부리 듯 요란스런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자나가곤 했지만 아내와 나의 어깨에 내려앉은 고즈넉함을 크게 흐트리지는 못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하나 둘 캠핑장의 불빛이 꺼졌다. 마침내 우리가 피운 불빛마저 마지막
으로 꺼지고나자 파도소리가 한층더 크게 들려왔다. 파도소리는 밤새도록 텐트를 흔들어댔다.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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