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날은 어퍼웨스트사이드 UPPER WEST SIDE에 있는 미술관과
센트럴 파크 등을 돌아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을 가려는
이틀 뒤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알게 되어 일정을 맞바꾸게 바꾸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의 여신상 구경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여행 중의 만나는 어떤 날씨든 크게 불만스러워해 본 적은 없지만
피할 수 있는 불편을 구태여 감수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미술관 관람은 날씨와 상관이 없는 일정이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일정의 변경에 따라 아침 식사의 장소도 바꾸게 되었다.
트라이베카 TRIBECA 지역의 식당 부비스 BUBBY'S (120 HUDSON ST.
212-219-0666)는 그렇게 하여 가게 된 식당이다. 아내가 좋아하게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달걀 후라이, 유기농 야채와 토스트를 구성된
부비스의 ‘정식’은 단출했지만 깔끔했고 커피와 잘 어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맨하탄 탐방을 시작했다.
첫 목적지는 그라운드제로. 모든 방송과 언론 매체들이, 정치가들이
상생과 평화를 염원하며 자못 호들갑스럽게 맞이했던 21세기는
그 벽두에 터진 9.11 사태로 전율과 공포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동남아로 업무 출장 중이었다. 고객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넣었는데 아내가 자못 떨리는
음성으로 기상천외의 말을 하였다.
“미국이 공습을 받고 있대. 빨리 씨엔엔을 틀어봐!”
“뭐라구! 어느 미친 나라가 미국을 공습한단 말이야!”
놀라서 틀어본 텔레비전에서는 ‘AMERICA UNDER ATTACK!’ 이라는 자막과
함께 비행기가 빌딩을 향해 돌진하는 믿기지 않는 장면이 되풀이해서 나오고 있었다.
*위 사진 : 재건 공사가 한창인 그라운드 제로.
지난 역사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노력 없이 말과 기도만으로
염원했던 인류의 ‘상생과 평화’는 허망한 것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세상에서 제일 높았다는 빌딩은 바벨탑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라운드 제로는 원래 (원자)폭탄이 폭발한 자리를 말한다고 한다.
9.11의 충격은 누구에게나 핵폭발 급이었다. ‘제로’는 무너짐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위한 원점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미국은 혹은 세상은,
지나간 세기 동안 자신들이 키워온 끔찍한 증오의 역사를 냉철하게 돌아
보아야 했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그 이후의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못했다. 미국은 ‘악의 축 제거’라는 ‘세상 구원의 소명’으로 포장한 전쟁을
시작했다. 세상은 더욱 거칠고 위험해졌다.
“9.11 때문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이 9.11을 이라크공격의 기회로 이용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먼 PAUL KRUGMAN 이 말했다.
*위 사진 : 9.11 당시의 사진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
그라운드 제로는 푸른색 천막을 두른 채 9.11 관련한 추모관을 포함한 새로운
트레이드 센터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운 찬 기계음과 부산한 움직임들이
무거울 수도 있는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었다. 한쪽에서는 9.11
당시를 담은 사진과 씨디를 팔고 있었다. 끔찍한 사건이지만 거기에 기대서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게 삶인가 보다.
그라운드제로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자유의 여신상 STATUS OF LIBERTY 이
있다. 물론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지하철 볼링그린 BOWLING GREEN 역에 내려
배터리 파크 BATTERY PARK 를 지나면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매표소에서 여신상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의 주요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티켓을 한권으로 묶은 시티 패스 CITY PASS를
79불에 샀다. 절약이 된다고 하는데 얼마나 절약이 되는지는 따져보지 않아 모르겠다.
페리는 30분 간격으로 출발을 한다. 여신상을 잘 보기 위해서는 배의 우측에
있으라는 팁에 따라 난간에서 카메라셔터를 누르다보니 잠깐 사이에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여신상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높이가 92미터이며 검지의
길이만도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동상이었다. 자유의 여신상 은 본명이 ‘세계를
밝히는 자유 LIBERTY ENLIGHTENING WORLD’라고 하던가?
자유.....
20세기 이래 세계에 드리운 미국의 ‘자유’는 무엇일까?
밖으로는 가난한 나라의 친미독재자들을 ‘자유의 통치자’로 부를 때 수식어로
쓰이고, 안으로는 적색분자를 색출한다며 2만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직장에서
몰아낸 매카시즘의 광풍을 칭송하는 데도 쓰인 미국의 그 ‘자유’......
여신상의 기단에는 미국 시인 엠마 래저러스 EMMA LAZARUS의 시가 붙어 있다.
GIVE ME YOUR TIRED, YOUR POOR,
YOUR HUDDLED MASSES YEARNING TO BREATHE FREE,
THE WRECHED REFUSE OF YOUR TEEMING SHORE,
SEND THESE, THE HOMLESS, TEMPEST-TOST TO ME,
I LIFT MY LAMP BESIDE THE GOLDEN DOOR!
(내게 오라,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해안에 지쳐 쓰러진 가엾은 사람들
집을 잃고 사나운 비바람에 시달리는 이들 모두 다 내게 오라.
나는 금빛 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불울 밝혀 주리라.)
여신상의 거창한 본명이나 래저러스의 시로부터 그라운드 제로까지가
현대사를 거치면서 굴절된 미국 정신사의 처음과 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페리는 여신상 다음에 옛 이민자들의 박물관이 있는 엘리스섬 ELLIS ISLAND에
정박했다. 아내와 나는 하선을 하지 않고 배에 머물렀다.
맨하탄으로 돌아오자 배가 고파왔다. 식당으로 가기 전 지하철 역 가까이 있는
볼링그린의 황소상을 ‘만지러’ 갔다. 1987년 이탈리아 조각가가 미국 증시의
강세를 기원하며 불법으로 설치했다가 명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황소의 ‘거시기’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 소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희롱’을 (?) 당해서인지 그곳만 유별나게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아내에게 만지라고 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할 뿐 차마 손을 대지 못한다.
나는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아내를 밀어내고 ‘그 놈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보았다.
앞으로 우리집이 부자가 되면 내 덕이고 지금처럼 계속 가난하면 당신 탓이라고
아내에게 면박도 주었다.
어제에 이어 또 한번 베트남 음식점을 찾았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나뜨랑 NHA TRANG (87 BAXTER STREET, TEL:212-233-5948)
이었다. 어묵국수와 오징어튀김(DEEP-FRIED SQUID ON SHREDDED LETTUCE
WITH A TANGY DIPPING SAUCE)를 주문하였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몇 해 전
베트남 여행 당시의 나쁜 기억으로 베트남 음식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아했던 아내도
뉴욕의 어제 저녁과 오늘 점심의 두 베트남 음식점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
*위 사진 : 차이나타운 내의 유명한 아이스크림 팩토리
식당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었다.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나이든
중국인들이 보였다. 타이치(太極)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타이치는 내가 가장 배워보고 싶은 운동 중의 하나이기에 어디서나
만나면 오래 보게 된다.
*위 사진 : 차이나타운의 공원에서 쿵푸의 품세를 연습하는 미국 소녀
뉴욕양키즈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리틀이탈리아 쪽에서 무슨 축제인지 가장행렬이 나왔다. 뉴욕이 다인종,
다문화의 도시임을 새삼 깨우쳐주는 순간이었다. 중국인축제, 태국인축제,
우즈베키스탄축제가 우리나라의 강남대로나 명동에서 벌어지는 날은 언제쯤이 될까?
지하철 4호선을 타자 양키즈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양키즈스타디움 역이 가까워올수록 그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사람들을
따라 경기장 쪽으로 걸어갔다.
아내와 나를 위한 좌석이 남지 않을 것 같아 발걸음이 초조했지만 다행이 표는 남아
있었다.
좌석이 3루 쪽 내야와 외야의 경계선 부근이라 그다지 시야는 좋지 않았지만
경기장의 후끈한 열기를 느끼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야구장에서 느낀 것 한 가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메이저리그는 7회초가 끝나고 나면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하는 것이 정례화 된 것 같다.
어디서건 자신의 나라를 찬양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9.11 이후 미국에 번지는 맹목적 ‘애국주의’의 산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너무 예민한 반응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야구장도 그럴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제3세계의 민족주의가 외세로부터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고 주체성을 지키려는 방어적 이념이라면 미국의 ‘애국주의’
에서는 종종 강대국의 일방적이고 우월적인 패권주의의 냄새가 나는 것이 문제이다.
야구가 끝난 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와 웨스트빌리지의
패티크랩 FATTY CRAB(643 HUDSON ST. TEL: 212-352-3590)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게 이름처럼 패티크랩에서는 게요리가 인기 메뉴인 듯 했다.
사람들이 가득한 모든 식탁에는 게요리 한그릇이 올라있었다.
우리도 칠리크랩과 빵을 먹었다. 싱가폴에서 먹었던 칠리 크랩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맛이 괜찮았다. 다만 너무 어두운 실내 조명과 시끄러운 빠른 템포의
음악이 식당이라가보다는 바의 분위기여서 음식과 대화에 집중을 하기가 곤란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한밤중이었다. 어제 젊은 기사 아저씨의 충고대로 지하철
대신에 손을 흔들어 노란 택시를 세웠다. 제법 빡빡한 일정의 하루였다.
'여행과 사진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 나의 뉴욕4 - 비를 피하는 법 (0) | 2013.03.18 |
---|---|
아내와 나의 뉴욕3 - 타임스퀘어와 5번가 (0) | 2013.03.15 |
아내와 나의 뉴욕1 - 지하철 (0) | 2013.03.14 |
샌엘리호 해변에서 주말 보내기 (0) | 2013.03.13 |
라스베가스만 가 보기 (0) | 2013.03.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