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여행을 계획한 이후 여행안내서와 인터넷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또 아내와 함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노래 등을 보고 들었다.「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뉴욕의 가을」,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따위의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뉴욕편」을 보았다.
노라존스 NORAH JONES의 노래 「뉴욕시티 NEW YORK CITY」와
뉴욕 태생인 척맨지오니 CHUCK MANGIONE의 「필쏘굿 FEEL SO GOOD」
같은 재즈곡까지 녹음을 해서 운전을 하며 듣고 다녔다.
NEW YORK CITY
SUCH A BEAUTIFUL
SUCH A BEAUTIFUL DISEASE......
사실 노래와 재즈를 제외하곤 영화와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큰 감동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숨은 그림을 찾듯 화면 속에서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을 발견하는 재미는 그런대로 쏠쏠했다.
아니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감상 보다 그런 곳을 찾아내는
일에 더 몰두 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여행이 낯선 곳을(곳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어떤 생각과 감정을 얻는 행위라면 각종 매체를 통한
사전답사도 이미 여행의 시작이자 한부분이라고 해도 좋겠다.
샌디에고에서 뉴욕은 비행기로 다섯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서울에서 방콕 가는 거리라고 생각하니 한결 실감나게 느껴진다.
아내의 표현도 ‘딱 방콕 가는 거리네.’로 같았다. 말을 하고 나서
아내는 ‘우리가 방콕을 좋아하긴 하나봐’ 하며 웃었다.
아내와 나는 여행지로서 태국을, 그중에서도 방콕을 좋아한다.
사랑스런 경험은 대상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구분하는 바탕이자
기준이 되기도 하나보다.
서울-방콕과는 달리 샌디에고와 뉴욕은 세 시간의 시차가 있다.
늦은 세 시간이 아니고 뉴욕이 앞서가는 세 시간이다.
그 때문에 아침 8시경에 샌디에고에서 출발을 하여 다섯 시간 남짓한 비행을
했을 뿐인데 뉴욕의 케네디 JFK 공항을 나올 때는 벌써 저녁 무렵이 되어 있었다.
인색한 미국의 항공사는 가방 하나를 부치는데도 돈을 받았다.
기내로 가지고 가는 가방의 크기와 수량에도 엄격한 제한을 적용했다.
기내식은 음료수를 빼고는 돈을 내고 사먹어야 했다.
물론 다양한 인종들과 온갖 문화와 음식들이 어우러진 ‘세계의 도시’ 뉴욕에 가면서
구태여 기내식에 눈길을 줄 필요는 없었다.
공항에서 맨하탄의 숙소까지는 미리 예약을 해 둔 차를 이용했다.
퇴근 시간이라 맨하탄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곳곳이 막혔다.
운전수는 깔끔한 인상의 젊은 한인 청년이었다.
그는 정체의 무료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빠다’ 발음이 섞인 한국말로
뉴욕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주로 처음 뉴욕을 온 사람들을 위한 주의사항이나 여행팁이었다.
뉴욕의 남북으로 이동할 때는 지하철을, 동서로 이동할 때는 버스를,
늦은 밤에는 지하철보다는 노란 택시를 타는 게 좋다고 했다.
프로야구팀 뉴욕양키즈 경기 관람을 예정에 두고 있어 물어보니
인기가 높아 당일에 가면 표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양키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말로 보건대 꼭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 뉴욕에서 양키즈팀의
인기는 샌디에고에서 지역 연고팀 파드레즈 PADRES의 인기 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일본 프로야구의 요미우리자이언트, 영국 프로축구의 멘체스터유나이티드처럼
미국 프로야구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뉴욕양키즈가 지닌 위력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뉴욕의 빌딩들이 멀리 푸른색 그림자로로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자주 보였다. 샌디에고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다.
교통 체증으로 예상 보다 늦게 월스트리트 WALL ST. 입구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한인이 운영하는 단기 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이었다.
뉴욕, 그것도 맨하탄의 호텔비용은 매우 높았다. 중심가를 벗어난 외곽지역의
호텔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맨하탄이 뉴욕 여행의 중심이 될 것이고
좋은 호텔에 묵는다 해도 시설을 이용할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인데,
들고나는데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돌뱅이의 얕은 주머니 사정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말이다.
편리한 위치를 우선으로 하여 예산에 맞추다보니 호텔이 아닌 민박집을 잡게 되었다.
시설과 환경은 깔끔하고 괜찮았다. 짐을 풀고 나니 어느 새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한 터라 배도 고팠다.
숙소 밖으로 나가 월스트리트를 걷는 것으로 뉴욕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이 끝난 후 월스트리트는 세계적인 자본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활기와 부산함이 사라지고 한가하다 못해 썰렁해 보였다.
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만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어차피 월스트리트를 지나쳐야 했다.
흔한 것은 귀하지 않은 법이다. 다른 곳에 묵었더라면 구경을 하러 찾아올
월스트리트인데 숙소 바로 앞이다 보니 평일 날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첫날은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우리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톤이 취임연설을 했다는 고대 그리스풍의
건물 페더럴홀 내셔널메모리얼 FEDERAL HALL NATIONAL MEMORIAL을 지나고,
그 맞은 편에 있는 월스트리트의 상징이라 할 증권거래소를 곁눈으로 보며 지나쳤다.
*위 사진 :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 트리니티 TRINITY
성공회 트리니티 교회 앞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갔다.
뉴욕 여행에 지하철은 필수다. 지하철은 뉴욕의 곳곳을,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퀸즈와 할렘을 연결하는 동맥이자 실핏줄이다. 생긴 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100년 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생각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매표소에서 27불을 내고 메트로카드를 샀다. 이로서 7일 동안 무한승차의 자격을 얻었다.
버스까지 탈 수 있다.
지하철과의 첫 만남은 놀랍고도 충격적이었다. 어둡고 지저분한 뉴욕의
지하철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그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껌으로 더덕진 바닥과 썩은 물이 흘러내린 벽, 습한 공기 속에 묻어오는 지린내......
그나마 다른 사람들처럼 쥐를 만나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위 사진 : 뉴욕 지하철에 붙어 있는 공익 광고. 테레 방지를 위한 것이겠지만
사진만 바꾼다면 지하철의 환경 개선을 위해서 뉴요커들이 해야할 수칙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뉴요커’라는 말이 내게 주었던 상큼하고 현대적인 이미지가 지하철 역사 안의 풍경에서 여지없이 부서져 내렸다.
“섹스앤더시티”의 화려함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뉴욕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도대체 미국의, 그것도 시대의 첨단이라는 뉴욕의 이 사람들은 왜 이런 풍경을 인내하고 용납하는가?
지하철 안에 무심한 표정으로 앉거나 서있는 다양한 얼굴 색깔의 승객들과 함께 흔들리며 나는 한동안
그들에게 마음 속으로 두서없는 질문들을 퍼부어야 했다.
뉴욕에서의 첫 식사는 유니언스퀘어역 근처의 사이공그릴에서 했다.
베트남식 돼지갈비와 깍두기처럼 정육면체로 썰어서 구운 소고기
(BO LUC LAC SALAD?)에 베트남 맥주를 마셨다.
검증된 식당에 검증된 음식이라 빗나가지 않았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만족할 정도였다.
사이공그릴은 여행안내서와 인터넷에 흔하게 올라와 있는 유명 식당이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 이어질 아내와 나의 뉴욕여행도 사이공그릴의 음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뉴욕에 오면 누구나가 찾는-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자유의 여신상, 브로드웨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의 통상적인 여행 포인트에 북마크를 해두었다.
흔하고 상투적인 장소를 목적지로 한 여행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식당에서
누구나 먹는 음식이지만 그 맛을 느끼는 주체는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가 된다.
그렇게 여행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장소의 특별함이 아니라 우리 둘만이 나눈 시간의 특별함이다.
*위 사진 : 유니언스퀘어 근처의 쵸코렛 전문 카페. 아래 사진은 먹어보진
않았지만 쵸코렛 PIZZA 라고 한다.
식사 후 유니언스퀘어근처를 둘러보았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붐비는 사람들로 열기가 몸에 감겨왔다.
걷기를 그만두고 지하철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 겸 장소 이동을 위해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을 찾아 갈아타기를 시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만만하게 생각했으나 ‘의정부’ 방향과 ‘인천’ 방향을 헷갈리고,
로컬(역마다 서는 완행)과 익스프레스의 정차역이 혼란을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주말 공사가 이미 예고되었던 듯) 노선의 운행이 평소와 다르게 변경되면서 잠시 감각을 잃고 허둥거리기도 했다.
우왕좌왕을 겪고 나자 뉴욕 지하철에 대한 대강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위 사진 : 늦은 밤의 월스트리트
덕분에 뉴욕에서 처음 지하철을 타시는 분에게 줄 ‘팁’이 생겼다.
초행자는 뉴욕 지하철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선도에만 매달리지 말고
(일주일이나 하루분의 표를 끊으면 무한승차가 가능하니 부담 갖지 마시고)
일단 한번 타보시라는 것 -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타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지하철을 깨우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마치 노련한 뉴요커가 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2010.9)
'여행과 사진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 나의 뉴욕3 - 타임스퀘어와 5번가 (0) | 2013.03.15 |
---|---|
아내와 나의 뉴욕2 - 자유의 여신상 (0) | 2013.03.14 |
샌엘리호 해변에서 주말 보내기 (0) | 2013.03.13 |
라스베가스만 가 보기 (0) | 2013.03.12 |
FRESNO의 꽃길 (0) | 2013.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