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아내와 나의 뉴욕4 - 비를 피하는 법

by 장돌뱅이. 2013. 3. 18.

여행 중에 만나는 비.
샌디에고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귀한 비라 무조건 싫지만은 않았지만 아무래도 활동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 때문에 가급적 실내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바꾸어야 해야 했다.
 

첼시 마켓 CHELSEA MARKET 이 첫 방문지였다.
지하철역(8TH AVE.-14TH ST.)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빗발은 굵어져 있었다.
첼시마켓까지 한 블록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비 예보를 알고 어제 탑오브더락에서 산
작은 우산으론 바람까지
가세한 빗발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내와 몸을 최대한
밀착하여 웅크린 채 걸었음에도 바지 아래쪽은 무방비로 젖어들었다.

“연애 때 같으면 이런 자세가 더 없이 황홀했을 텐데.....”

길가 빌딩의 옹색한 처마 밑에서 잠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다 꺼낸
말에 아내는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흘기며 우산의 빗방울을 나를 향해 튕겼다.

“그랬는데? 지금은 뭐 어떤데?”
“아니 뭐... 지금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옛날에 말이야.”
“말뜻이 옛날을 향한 게 아니라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첼시 지역은 원래 20세기 초까지는 공장지대였다고 한다.
공장이 문을 닥고 떠나자 미술가들이 빈 건물을 접수,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지금은 뉴욕에서도 이름 있는 문화 지역이 되었다.

식료품과 베이커리 등이 들어선 첼시 마켓도 원래는 과자 공장이었다고 한다.
원래 있던 공장의 벽과 담을 최대한 이용하여 개조를 한 탓에 여느 마켓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마켓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만
했다. 오래된 것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이 붉은 벽돌의 질감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개발이라고 하면 무조건 옛것을 치워버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졸속은 없어 보였다.
 

 


*위 사진 : 엘레니의 과자들

첼시마켓 안의 엘레니 ELENI'S에서 아침을 했다.
맛에 앞서 예쁜 모양이 돋보이는 과자를 만드는 곳이었다.
비오는 날이라 과자와 함께 먹는 헤이즐넛 커피의 향이 유난히 진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식사를 마치고 통로를 따라 마켓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크지 않은 규모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첼시마켓에는 엘레니스 외에도
특색 있는 베이커리들과 사라베스 SARABETH'S 같은 유명한 식당, 그리고 식품점 등이 있었다. 


*위 사진 : 첼시마켓 내 RUTHY'S BAKERY & CAFE가 만드는 귀여운
               텔레비젼 케릭터의 케이크들.

다시 ‘황홀한’ 자세로 우산을 쓰고 마켓을 나왔다.
가까운 상점에서 작은 기념품 사기도 하고 가게에서 음료수도 마시며
혹시나 비가 그치기를 기대해 보았지만 빗방울은 점점 거세어지기만 했다.
예정했던 첼시 지역의 미술 갤러리 방문은 접기로 했다. 
 

 


*위 사진 : 성패트릭대성당의 안팎. 외부 모습은 비가 오지 않은
               전날에 5번가를 지나며 찍은 것이다
.

그리고 예정을 앞당겨 5번가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ST. PATRICK‘S
CATHEDRAL 으로 갔다. 뉴욕에서 가장 크다는 성당 구경도 할 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서 미리 미사시간을 점검해 두었다.

100미터 높이의 첨탑 2개가 우뚝한 세인트 패트릭 성당은 5번가를 걷다보면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화려한 겉모습처럼 직각으로 곧추선 기둥들이 둥근
천정과 만나 이루는 내부 공간 역시 아득히 높고 장중하며 아름다웠다.

성당 안에서는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제사가 그렇듯 성당의 ’제사‘도, 그 교리적 의미가 무엇이건,
나는 인간이 세상과 절대자에 대해 믿음 이전에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낮춘 만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 것이고 감사할 수
있는 만큼 삶이 축복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위 사진 " 그랜드 센트럴 역

성당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그랜드 센트럴 역 GRAND CENTRAL TERMINAL 으로 갔다.
비를 피하며 뉴욕을 돌아보는 방법이겟다. 역은 191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비 때문에 밖으로 나가진 않고 내부만 구경을 했다. 중앙홀은 광장
처럼 넓었다.
하루 600여 편의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역이라고 했다.


아내와 홀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아픈 다리를 쉬며 역사의 내부를
눈으로 더듬다가 부산하게 우리 앞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참으로 다양한 차림새와 얼굴 색깔의 장삼이사들이 지나갔다. 새삼스럽게
미국과 뉴욕이 온갖 ’인종의 박물관‘임을 느낄 수 있었다.
퇴색해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양성과 조화로움은 미국의 힘이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어디서나 있는 개발의 열풍에 허물어질 위험에
   처했지만
재클린 케네디와 뉴요커들은 오래된 역을 보전하기 위해 싸웠다.
   싸워서 보전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내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어떤 사람들은 싸워서 지킬 만한 것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당신은 기억하는가? 
                                      
-서진의 소설, 『웰컴투더언더그라운드』중에서 -  


*위 사진 : 머서키친에서의 점심

비는 그치지 않았다. 더 이상 외부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숙소 쪽을 향해가기로 했다. 그래서 소호 SOHO로 갔다.
소호는 SOUTH OF HOUSTON STREET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한때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고 하나 지금은 호사스러운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밀집된 지역이 되었다.

소호의 머서키친 MERCER KITCHEN에서 점심을 먹었다
(99 PRINCE STREET, 전화 212-966-5454).
이름난 쉐프의 식당이라 여기저기에 호평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입맛의 차이 때문인지 선택을 잘못했는지 그다지 감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깔끔하고 산뜻한 모양의 음식이었다.


식사를 하고 우리는 결국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내 역시 비오는 날의 우산 속 데이트가 젊은 시절처럼 ’황홀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50하고도 중반을 지나는 나이다.

이제 순간의 짜릿한 감정이 아닌 해묵어 느긋한 은근함으로 우리가
서로의 사랑을 교감하게 되었다고 해서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식당 근처의 바디케어용품점인 사봉 SABON에서 천연비누와 크림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까지 곤한 잠을 잤다. 비오는 날과 낮잠
- 오징어와 땅콩이나 라면과 구공탄처럼 짝으로 잘 어울리는 말이다.
다만 고층빌딩의 완벽한 방음 때문에 빗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깬 아내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이 피어오르는 빌딩 사이 골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비에 젖은 도로가 자동차의 불빛에 거대한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몸이 개운했다. 포기한 일정에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