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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아내와 나의 뉴욕5 - 뮤지엄마일과 엠파이어스테이트

by 장돌뱅이. 2013. 3. 19.


*위 사진 :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평일 아침의 증권거래소 앞 풍경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는 밤이 지나면서 그쳤지만 아직도 못 다한 미련이 남아 있는지 하늘은 여전히 찌푸려있었다. 
일단 비가 오지 않으니
뉴욕에 온 이래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의 통상적인 아침 풍경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증권거래소 앞에는 상상했던 넥타이 부대의 분주함 대신에
검은 유니폼을 입은 경찰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테러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장소나 빌딩을 지키는 그런 살풍경한 모습이 이젠 뉴욕에선 흔한 일상이 된 듯하다. 
그러나 뉴욕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곳곳이 첨단의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여 강화된 보안 검색을 실시하고 있는
데도 ‘체감 안정성’은 예전보다 더 떨어진 느낌이다.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 사진 : 어퍼이스트 UPPER EAST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 위쪽 센트럴 파크의 동쪽 동네 UPPER EAST에 있는 77번가 역에서 내렸다. 
거리로 나오자 직사각형의 건물들이 빽빽했다.

내 눈에는 그다지 폼이 나 보이지 않는데 여행안내서에는 뉴욕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했다.

이곳에는 두 개의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 구겐하임미술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밀집되어
있어 이 일대를 ‘뮤지엄마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둘러볼 곳은 줄여서 “MET”로 부르기도 하는 메트로폴리탄이다.

구겐하임도 염두에 두어보았지만 하루 두 곳의 미술관은 아무래도 우리 부부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번
뉴욕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는 법이며 때로
아쉬움은 훗날을 기약하는 동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사실 메트로폴리탄 한 곳도 너무 방대하고 다양한 소장품을 지니고 있어 하루만에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특정 부분만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위 사진 : 구겐하임 미술관

지하철역을 나와 거리 구경을 할 겸 아침 식사 장소로 걸어가는 길에 구겐하임을 지나쳤다. 
별명이 ‘달팽이’인 흰색의 이 건물은 독특한 나선형의
구조로 소장품 이전에 건물 자체가 볼거리다. 
안에 들어가면 맨 위층으로
올라가 동그라미를 타고 내려오며 벽에 붙은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고 한다.
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건축가 김석철의 글을 떠올리며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건물의 외관을 훑어보았다.


  
현대미술의 공간은 옛 미술의 공간과는 달라야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일상적
미술의 장소이기를 거부한다. 나선형의 램프는 좋은 전시공간이
   아니고 밑보다
위가 큰 원통의 공간에선 소리가 울린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서면 원통의
공간에 가득한 소리에 갇혀 움직여야 한다. 빛은 한가운데서
   더 밝아 정작 그림
앞은 어둡다. 현란한 공간유희이면서도 표면의 디테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 서면 현대미술은 원형공간에 서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여기서 미술은 그냥 우리에게
   다가온다. 현대미술은 현실 여기저기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구겐하임은 현대미술의 요람 같은 곳이다.
(...) 구겐하임은 현대 미술의
   본질을 가장 잘 알고 그들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서면
   오늘의 사람이 된다. 그런 것이 정말 중요하다.
                                               
- 김석철의『세계건축기행』중에서
 


*위 사진 : 어퍼이스트의 식당 EAT에서의 아침식사

식당
EAT(1064 MADISON AVE. TEL: 212-772-0022)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MET로 갔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홀 안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매년 5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위 사진 : MET의 안팎

어디로 가야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박물관의 지도를 보고 2층에 있는 한국관으로 갔다. 
한국관은 토기와 분청사기, 고려청자 등의 전시품이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우리 문화에 대한 세상의
인지도라는 생각에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위 사진 : 한국관의 전시품 중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회화관이나 이집트관 쪽에 몰려 있는 듯 했다.
한국관을 보고 아내와 나도 이번 방문의 주목적지인 유럽회화관을 보러 갔다.
잠시 중국관과 이집트관 등을 스치듯 지나쳤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유럽회화관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르누아르와 고호, 고갱과 세잔느, 모네 등의 그림을 만났다. 
그때는 무심히 보았던 것들이
반갑게 다가왔다. 문화는 반복된 훈련이 만든익숙함이다.
오래 자주 보는 것이다.

아내는 이번 뉴욕 여행에서 MET를 가장 감동적인 곳으로 꼽았다.
방대한 에술 작품 이외에 많은 인파들이 서로 큰 방해를 받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규모와 배치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위 사진 : MET에서 만난 모네의 그림 

 

 


*위 사진 : 고흐의 그림

MET 관람을 마치고 센트럴파크를 사이에 두고 MET 반대편에 있는 서쪽 동네 UPPER WEST 로 갔다. 
센트럴파크는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공원으로 남북으로 4킬로미터, 동서로 8백미터의 직사각형의 녹색 공간이다.

MET에 있는 동안 비가 쏟아졌는지 길은 젖었고 공기 중에는 아직 습기가 남아 있어 눅눅했다. 
그 때문에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푸른 잔디의 광장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뉴요커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활기가 없는 공원은
자연도 아니고 인공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우리도 무덤덤한 기분이 되어
공원을 가로 질렀다.
 


*위 사진 : 비 때문에 좀 무료했던 센트럴파크

공원을 벗어날 무렵 길바닥에 희고 검은 타일로 장식한 동그란 문양을 보았다.
중심부에 IMAGINE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존레넌을 추모하는 곳이라고 한다.
죽여야 할 것도 그것을 위해 죽어야 할 그 무엇도 없고, 탐욕도 소유도 없이
그저 평화롭게 오늘을 사는, 무위(無爲)의 세상을 'IMAGINE' 했던 그를,
세상은 어처구니없게도 권총으로 살해했다.
 

공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가 살던 다코타아파트 DAKOTA APARTMENT 가 있다. 
공원 동쪽과 마찬가지로 역시 뉴욕의 최고급 아파트라고 한다.
 아파트 정문의
경비가 백인이라는 사실이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물음에 익숙해져 있는 듯 경비는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손가락으로 정문 안쪽
바닥을 가리키며 “바로 이 곳.” 이라고 했다.
존레넌이 세상을 떠난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위 사진 : 다코타 DAKOTA 아파트

셰이크색 SHAKE SHACK (366 COLUMBUS AVE)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뉴욕에서 유명한 햄버거집이라고 했다. 본점은 메디슨스퀘어 공원에 있다. 
아내는
이틀 전 점심으로 먹은 버거조인트보다 이곳 햄버거의 맛에 더 만족스러워 했다.
 

셰이크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연사박물관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이 있다.
 크게 관심이 가는 곳은 아니었으나 패키지로 구입한 티켓 속에
입장권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4층의 이 박물관도 오래 보려면 무한정의 시간이
필요할 곳이었다. 
우리는 단 하나, 4층의 공룡관,
그중에서도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만 보고 나오기로 했다.
 

한때 지구상의 최강자로 번성했던 공룡은 뼈대만으로도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공룡의 멸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은 공룡의 멸종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2억3천만년 전부터 65000만년까지 약 1억6천만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동안
공룡이 지구상에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연구해야 한다고.
그는 아무리 오래 잡아야 수백만년 안쪽의 역사를 지닌 인간들이 공룡의 멸종을 운운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했다. 
공룡 생존기간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을 인간의 짧은 지배가 지구라는 생태계에 가한 위협을 생각하면 
그 말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위 사진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입구에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안내데스크에서는 날씨 관계로
전망대에서의 시야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발 빠르게 다른 대체 관광을
소개하는 ‘삐끼’들도 가세하여 올라가봐야 구름 밖에 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과장하고 있었다.

빗방울은 없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푸린 상태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빌딩의
상층부가 구름에 가렸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하여
이틀을 내렸으니 이젠 개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우리는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설혹 구름 밖에 보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만의 특별한 여행이
되어 남을 것이라 크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전망은 전문가들이 찍은 사진 속에 이미 있으니까.”
아내는 긍정적인 여유를 보탰다.

오락가락
날씨 덕에 좋은 점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두 번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언제나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으나 이 날은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골든아워였음에도 대기 시간 없이 신속하게 전망대로 오를 수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는 86층과 102층에 전망대가 있다.

우리는 86층으로 갔다. 102층은 별도의 관람료가 필요한 것 같았다.
 


*위 사진 : 엠파이어스테이트에서 본 북쪽 풍경.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나는 불빛들이 찬란했다.

86층은 열린 공간이었다. 관람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둘러놓은 담과 창살이 있을 뿐이었다. 
빌딩을 중심으로 한 맨하탄의 동서남북을 둘러볼
수 있었다. 
구름은 여전히 발아래에서 오락가락 하였지만 뉴욕의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구경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어린 시절 서울의 맨 동쪽 고향 망우리의 아차산에 올라가면 사람들은 멀리 도심쪽으로 우뚝하게 솟은 시커먼 윤곽을 
가리키며 저것이 종로에 있는 
31층 삼일빌딩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때는 공기가 맑았기 때문인지 가시거리가 멀었다.)
그럴 때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제일 높은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이어지곤 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물론 그곳에 있던 어른 누구도
뉴욕을 다녀온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위 사진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서쪽 풍경 


*위 사진 : 동쪽 풍경 


*위 사진 : 남쪽 풍경

그렇지만 그 당시 모든 사람에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었다.
그것은 또한 눈부신 자유와
풍요의 의미이기도 했다.
세상에 102층이라니! 
삼일빌딩보다 네 배나 높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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