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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아내와 나의 뉴욕6 - 나이아가라 폭포

by 장돌뱅이. 2013. 3. 20.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주변을 가는 날.
2박3일의 패키지여행이다. 투어를 진행하는 중국계 여행사는
버스와 호텔만을 제공하고 나머지 식사와 관광은 여행자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방식이다.

뉴욕여행을 앞두고 나이아가라를 다녀오는 방식을 두고 고민을 했다.
비행기냐 아니면 렌트카냐? 비행기는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는 반면 당연히 비용의 부담이 있었고
렌트카는 피곤한 장거리 운전이지만
오고 가는 길의 자유로운 일정이 매력이었다.
그러다가 중국계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일정을 알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해보는 버스 관광이라 호기심도 일었다.

나이아가라 이후에 좀 지루한 느낌을 주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패키지였다. 
중국 여행사다 보니 출발점이 차이나타운에 있었다.

아침 일찍 집결 장소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근처 빵집에서 커피를 곁들여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출발. 
 

첫날의 일정은 간단했다. 줄창 버스타고 나이아가라까지 가기.
하지만 오래간만에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터라 편안했다.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자리가 넉넉하여 아내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널찍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며 갔다.
 


*위 사진 : 나이아가라 가는 길의 황혼

나이아가라까지의 길은 멀었다.
가다가 휴게소에서 쉬고, 가다가 던킨도너츠로 점심을 먹고,
또 가다가 코닝 CORNING이라는 지역의 GLASS CENTER에서 구경도 하고, 
다시 또 가다가 저녁을 먹고, 또 한참을 더 달려서야
국경을 넘어 캐나다 쪽의 나이아가라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폭포는 색색의 불빛에 물들어 있었다.
색상이 좀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오래 먼 길을 달려서
드디어 나이아가라에 왔다는 생각에 트집부터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튿날 아침 하늘은 곧 비를 쏟을 것처럼 잔뜩 찌푸려 있었다.
아침을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행들은 아이멕스 극장에서 나이아가라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아내와 나는 그동안 영화가 아닌
실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갔다.
 

 

캐나다 쪽에서 보면(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것이 아메리칸 폭포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말발굽폭포 HORSESHOE FALL 라 이름 붙여진 캐나다 폭포이다.
 

 

 

 


*위 사진 : 아메리칸 폭포

아메리칸 폭포는 자세히 보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른쪽의 작은 물줄기가 브라이들 베일 BRIDAL VEIL 폭포이다.
 

 

 


*위 사진 : 말발굽폭포

이 두 개(혹은 세 개)의 폭포를 합쳐 나이아가라 폭포라 부르는 것이다.
어느 것이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크기를 지녔으나 가까이 있다
보니 서로 비교가 되어 시각적 장엄함은 아무래도 폭이 넓은 말발굽 폭포에서 더 느껴졌다.

말발굽폭포 HORSESHOE FALL 는 폭이 무려 7백 미터에 가깝고 높이는 50미터가 넘는다. 
시퍼런 물줄기는 천둥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떨어지며 자욱이 물보라를 피워 올렸다. 
가까이 다가서자 빠른 물줄기에
몸이 빨려드는 것 같았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시, “폭포”-

1901년 안나테일러라는 63세의 여성이 나무통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렸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폭포에서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나이아가라의 폭포에서 뛰어내린다는,
목숨을 건 모험이, 적지 않은 나이의 그 여성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흉내낼 수는 없지만 무모함 보다는 무언가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아니면 일상이 무의미해지는......
누가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으랴.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의미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밤이 깊은 세상에 곧은 소리를 내며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김수영식 ‘고매한 정신’의 ‘폭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폭포구경을 마치고 이곳에 오면 누구나 하는 안개아가씨 MAID OF THE MIST 호를 탔다. 
폭포 가까이 접근하여
물보라에 몸을 맡기는 순서였다.
배를 타기 전 직원이 경쾌한 소리로 외쳤다.
“ENJOY YOUR SHOWER!” 
 

 


*위 사진 : 스카일론타워와 전망

폭포 옆 언덕에 높이 솟은 스카이론타워 SKYLON TOWER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번 패키지여행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옵션이었다.
식사는 평범했지만 전망은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이아가라를 떠났다.
다시 버스로 2시간 정도를 달려 토론토 TORONTO 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타리오 ONTARIO 호수를 도는 유람선에 올랐다.
아내와 나는 둘이서 천천히 토론토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쪽을 택했다.
옵션으로 이루어지는 관광은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좋았다.
짧은 토론토와 의 만남이었다. 전차가 다니는 토론토의 인상은 깨끗했다.
‘캐나다의 스타벅스’라는 팀호튼 TIM HORTON 커피점에서 커피도 마셨다.
높다란 CN 타워에 올라보았다.
나이아가라에서 거기까지 따라온 두터운
구름들만 아니었다면 더 밝은 모습의 토론토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위 : 씨엔타워와 조망, 맨 아래 사진은 씨엔타워 꼭대기에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내려다본 풍경. 

 

저녁식사는 토론토 시내의 차이나타운에서 했다.
버스 하차 지점에 마침 한국음식점이 있어 아내와 나는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고향은 까마귀도 반갑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중국인 상점에서 저녁에
먹을 맥주와 주전부리를 샀다. 
토론토의 중국인 이주는 1900년 대 초에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많이 몰려왔던지 나중엔 중국인 이민금지법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이로운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밤길을 달려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호텔에 들었다.
아내와 나는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곤한 잠에 빠졌다.
 

 

 

 

다음날은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서너 시간을 달려 천개의 섬 THOUSAND ISLANDS 이 있는 세인트로렌스 강변의 선착장까지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강에는 수많은 작은 섬들이 떠 있었다.
실제로는 1800여 개에 이른다는 섬에는 미국과 캐나다인들의 별장이 동화처럼 예쁘게 들어서 있었다. 
배는 아침 강물을 가르며 섬 사이를 떠다녔다.
맑은 물과 햇살 속에 섬들은 참신한 아침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인트로렌스 강에서의 아침 뱃놀이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버스는 올 때만큼이나 먼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다시 뉴욕의 차이나타운으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어두워진 후였다.
 

 

차이나타운에서 하차를 하여 3일 동안 여정을 함께 한 일행들과 헤어졌다.
하차 지점에서 멀지 않은 조스상하이 JOE'S SHANGHAI( 9 PELL STREET, 전화: 212 233-8888)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이 줄울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도 다른 사람들과의 합석을 감수해야 했다.
우연히 우리와 함께 앉게 된 미국인은 한국과 태국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서로 태국의 싱하SINGHA 맥주비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한결 분위기가 친근해졌다
. 조스상하이는 샤오룽파오(小龍包)가 유명한 곳이라
모든 테이블마다 한두 바구니씩이
올라와있었지만 
아내와 나의 입맛에
그다지 감동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이아가라를 다녀왔는데!
어느덧 뉴욕여행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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