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은 북아메리가 대륙의 서부에 있다.
캐나다와 미국을 거쳐 멕시코에 이르는 북미 대륙의 ‘태백산맥’으로 그 길이가
무려 4천5백 KM로 7천KM의 안데스 산맥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긴 산맥이다.
로키산맥이 지나는 콜로라도에는 ‘COLORADO'S FOURTEENERS’ (THE 14ERS)라고
하는 고도 1만4천피트(약4천3백미터) 이상의 산봉우리가 58개나 된다.
미국의 로키보다 캐나다의 로키가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비교는
내설악이 아름다우냐 외설악이 아름다우냐 혹은 설악산이 좋으냐 지리산이 좋으냐 처럼
호사가들의 단순 말장난일 뿐이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산은 없으며 모든 산은 그냥 산으로서 ‘필요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깊은 골과 숲에 맑은 물을 담고 모든 순진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산은 인자한 품성의 어머니처럼 거룩하다. 흙과 바위와 나무로 이루어진 커다란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신성한 정신의 존재인 것이다. 예로부터 올바른 일을 좇으며
덕이 두터운 인자를 산에 비교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산을 닮고 태어나
산이 되어 죽는다
-이대흠의 시 중에서 -
*위 사진 : 로키산에서 만난 짐승들
1997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중가수 죤덴버 JOHN DENVER에게서도 그런 산의
모습을 본다. 그는 콜로라도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름까지 콜로라도 수도의
이름과 같은 덴버로 바꾸었다. 그의 노래 ROCKY MOUNTAIN HIGH에는 그것이
단순한 외형적인 이름 바꾸기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로키산은 그의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그의 삶을 황홀하게 바꾸어 놓았던 것 같다.
HE WAS BORN IN THE SUMMER OF HIS 27TH YEAR
COMING HOME TO A PLACE HE'S NEVER BEEN BEFORE.
HE LEFT YESTERDAY BEHIND HIM.
YOU MIGHT SAY HE WAS BORN AGAIN.
YOU MIGHT SAY HE FOUND THE KEY TO EVERY DOOR.
(그는 스믈일곱 살이 되던 해 여름에
그가 전에 결코 가보지 못했던 고향으로 가면서 태어났다.
그는 이제까지의 과거에서 벗어났다.
아마 그가 다시 태어났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아마 그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콜로라도의 주도인 덴버와 그 주위로 가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내와
ROCKY MOUNTAIN HIGH를 주제가처럼 자주 들었다. 존덴버의 맑고
청아한 음성이 로키산의 맑은 공기를 실어오는 듯했다.
처음에는 차로 가는 방법을 생각했다. 텐트를 싣고 가서 로키산에서
캠핑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샌디에고에서 콜로라도까지는 너무 멀었다.
꼬박 이틀을 운전해야 산 언저리에 닿을 수 있었다. 오고가는 것도 여행이니
운전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으나 주어진 시간이 문제였다.
할 수 없이 오고가는 교통을 비행기로 대체하고 캠핑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에 덴버 주변을 좀 더 넓게 돌아보기로 했다. 샌디에고에서 덴버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반 걸린다. 샌디에고와 시차는 한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비행기를 탄 덕분에 9시 40분 경에 덴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덴버공항은 로키산맥을 형상화 한 것 같은 34개의 흰 원뿔 모양의 지붕을 이고 있었다.
크기도 대단하여 맨허튼의 2배만한 면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공항을 나오기 전 렌트카데스크에 들렸으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버짓 BUDGET 간판을 찾을 수 없었다. 텅 빈 렌트카 안내 창구를 혼자 지키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버짓 렌트카는 어디 있죠?”
“무슨 렌트카?”
“버짓!”
“무슨?”
“버짓!”
(영감이 자꾸 고개를 갸웃하여 프린트물을 보여주자)
“아, 버짓!”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서 한번 확인해 본다.)
“내 발음이 이상하게 들립니까? 버짓이라고 했는데...”
“노! 버짓!”
(그가 웃으며 본토 발음을 들려주는데 나로서는 똑같다.)
“예, 버짓!”
“노노노, 버짓!”
이런 젠장! 서로의 발음이 내가 듣기엔 똑같은데 그는 계속 틀리다고 했다.
가끔씩 미국인들과 대화에서 발음 문제로 막힐 때가 있다. 물론 내 발음이
유창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돌뱅이로 해외를 싸돌아 다닌지 20년의
경력인지라 서로 ‘제2외국어’인 나라에서는 대충 통하고 살아왔는데,
본토에 오니 발음 때문에 자주 설움을 당한다. 그것도 ‘버짓’처럼 너무 쉬운
단어가 문제가 되면 대화에 앞서 기가 막히게 된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디저트가 뭐가 있죠?” 하고 물었을 때
종업원이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밥 먹고
나서 추가로 무슨 ‘짬짜면곱빼기’를 한국말로 찾는 것도 아니니 짐작으로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련만 당최 상대는 ‘귀머거리’였다. 할 수 없이 무슨 발음 연습하는
학생처럼 악센트와 알(R) 발음에 주의해 가면서 같은 단어를 서너 차례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시쳇말로 ‘쪽이 팔리는’ 일이었다.
다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은 알아먹으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그래서 아예 푸딩PUDDING으로 바꾸었다.
“WHAT'S FOR PUDDING?”
아내는 이번 여행으로 며칠 결석한다며 학교 ADULT SCHOOL 선생님에게
‘덴버’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템플’로 알아듣더라고 자신의 영어 발음에
절망스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사전찾기가 귀찮아 정통종합영어의 발음편을
공부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성조가 있는 중국말이나 태국말도 아니고......
언젠가 태국에서 늘어놓았던 불평을 미국 땅에서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젠장 신성일이나 신송일이나 강호동이나 깡호동이나!”
*위 사진 : 덴버공항 내부
공항청사 밖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에서 차를 빌려 본격적인 여행에 들어갔다.
오늘은 로키마운틴에 들어가기 전 그 남쪽에 있는 에반스 산 MOUNT EVANS
정상(4,350미터)에 오를 참이었다. 정상 바로 밑에까지 포장도로(MT EVANS
SCENICBYWAY)가 나있어 차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위 사진 : 아이다호스프링스의 카페 투브라더즈
우선 산 아래 작은 마을 아이다호스프링스 IDAHO SPRINGS에 들려 요기를 했다.
TRIPADVISOR에 나와 있는 TWO BROTHERS CAFE에서 커피와 직원이 추천해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작은 '읍내'에 있는 투브라더즈는 깔끔한 분위기였고 음식의
맛도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동네 잡화점에서 이번 여행 동안 필요한 물품을 사서
차에 실었다.
*위 사진 : 마운틴 에반스
에반스산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가끔씩 산꼭대기가 언뜻언뜻 보였다.
흰 눈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아내와 나를 흥분시켰다. 그런데 본격적인 산행도로가
시작되는 곳의 출입문은 닫혀있었다. 아마 하루 이틀 전 덴버에 내렸다는 눈의
영향인 듯 했다. 우리는 사실 로키에서 산 아래에서는 가을을, 산위에서는 흰 눈의 겨울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올 가을은 유난히 긴 여름에 막혀 아직 오지 못하고
갑자기 눈이 내렸다. 가을 없이 늦여름과 초겨울이 맞닿아 있는 꼴이 된 것이다.
빗나간 첫 여행지의 사정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차를 돌려나와 로키산으로 향했다.
오늘 잠 잘 곳은 로키산 중턱쯤에 있는 마을, 그랜드 레이크 GRAND LAKE의
WESTERN RIVIERA LAKESIDE LODGE였다. 이름대로 호수에 접해 있는 숙소라
일찍 도착하여 아내와 천천히 호숫가를 걷는 시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도 넉넉해 느긋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로키산으로 들어갈수록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로키산에서 내려오는 두터운 구름 때문이었다.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마침내 빗줄기가 뿌옇게 차창을 적셔오기 시작했다.
낭패감이 들었다.
이곳에 내리는 비는 해발 4첨미터가 넘는 로키산에는 눈으로 내리고 있을 터이고,
눈이 쌓이면 산꼭대기를 휘돌아 넘는 트레일릿지로드 TRAIL RIDGE ROAD 역시
에반스산의 도로처럼 닫힐 것이다. 에반스산은 가볍게 포기했지만 로키산은
이번 여행의 주제이므로 쉬게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산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그 도로가 막히면 내일은 들어간
길을 따라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그랜드레이크에 들어가 물어보니 더욱 절망스러웠다.
오후 2시부터 도로가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체크인을 한 후 인터넷으로 내일의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강수 확률 50%. 그야말로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경계의 편리한(?) 예보였다. 하긴 비가 쏟아지는 오늘의 강수확율이 30%로
나와 있으니 50%면 비가 온다고 보아야 했다.
높은 산악지대다 보니 날씨의 변화가 잦고 가까운 지역별로도 날씨의 편차가
큰 모양이었다. 비가 약간 잦아지길 기다려 호숫가를 걸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산책은 상상 속에 기대하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을은 작고 예뻤지만
축축히 젖은데다가 오가는 사람도 없어 썰렁했다.
맥주를 사려고 리쿼샵을 기웃거리다 만난 한 마을 주민이 이곳의 지방 맥주인
WOOLY BOOGER 를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권해 주었다. WOOLY BOOGER는
송어 낚시를 할 때 쓰는 가짜 미끼를 뜻한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그 맥주를 마셨다. 비는 계속 됐다.
*위 사진 : TRAIL RIDGE ROAD. 내일은 숙소인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가야하는데...
아내와 나는 내일 로키산을 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여행 계획을 다시 작성했다.
내일 들어온 길을 따라 다시 덴버 쪽으로 나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한 뒤,
여행 후반부에 로키산을 넘는 것으로.
*위 사진 : 잠깐 하늘을 드러내며 우리를 흥분시켰던 순간의 그랜드레이크 풍경
한번은 쉼 없이 비가 내리던 날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거짓말처럼 개어
우리를 숙소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어 우리를 맥빠지게 했다. 나는 비교적 여행 중 날씨 운이 좋은 편이다.
이제까지 여행 중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일을 못한 적은 없었다. 그걸 믿는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몇 차례 밖에 나가 하늘을 보았지만 별빛은 보이지 않고
무정하게도 실비가 얼굴에 부딪혀 왔다.
“기도라도 해보지.” 아내가 말했다.
“내비 둬. 영감님이 지구상에 벌어진 전쟁 막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 같던데,
노는 사람 위해 날씨까지 신경 써달라면 되겠어?”
대범한 척 말했지만 마음속으론 “하느님, 믿싸옵니다”하고 광신도처럼 부르짖었다.
'여행과 사진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ROCKY MOUNTAIN HIGH3-덴버 (0) | 2013.03.24 |
---|---|
ROCKY MOUNTAIN HIGH2-트레일릿지로드 (0) | 2013.03.23 |
아내와 나의 뉴욕(끝) - 뉴욕뉴욕뉴욕 (0) | 2013.03.21 |
아내와 나의 뉴욕6 - 나이아가라 폭포 (0) | 2013.03.20 |
아내와 나의 뉴욕5 - 뮤지엄마일과 엠파이어스테이트 (0) | 2013.03.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