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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ROCKY MOUNTAIN HIGH3-덴버

by 장돌뱅이. 2013. 3. 24.

 

 

이틀밤을 묵었던 덴버의 숙소는 MARRIOT에서 운영하는 RESIDENT INN이었다.
주방 설비가 완비되어 있는데다가 위치도 덴버의 중심지여서 주위를 돌아보기에
편리했다. 게다가 야구 경기가 열리는 COORS FIELD와도 불과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더욱 좋았다.

어제 로키산맥에서 내려와 저녁 무렵에 체크인을 하고 피로를 풀 겸 아예 작정을
하고 늦잠을 잤다. 느지막히 일어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미국식 아침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다시 방에서 뒹굴다가 덴버 도심을 걸어보기로 했다.

덴버는 해발 1,600미터(1마일)에 위치한 고원의 도시다.
그래서 '마일 하이 시티 MILE HIGH CITY' 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시 전체가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인근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성장한 덴버는 미 중서부 내륙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이다. 주민의 80%이상이 백인계라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의
비율이 다른 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상가와 호텔, 식당, 극장 등이 늘어서 있는 16번가를 따라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걸어다녔다. 덴버거리는 미국 대도시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일부
노숙자의 모습을 제외하면 밝고 깨끗했다.

16번가를 따라 남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도로변에 기념품점이 있어
구경도 할 겸 들어가 보니 주인이 뜻밖에 한국분이다.
미국에서도 내륙인 이곳 덴버까지 무슨 사연이 있어 오게 되었을까?
역마살. 미국에서 만나는 모든 한국 사람들은 역마살이 낀
팔자라고 성당 수녀님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한 적이 있다.
처음 만난 주인에게 그 역마살의 내력까지 물을 수는 없고
그저 서로 한국인이라는 것만을 반갑게 확인했다.  
그리고 작은 기념품을 하나 사들고 가게를 나왔다. 

 

 

16번가가 끝나갈 무렵 황금빛 돔형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콜로라도 주청사 COLORADO STATE CAPITAL 건물이다.
휴일이라 청사로 들고나는 사람이 없어 입구 계단은 텅 빈채고
청사의 그림자가 드리우져 있었다.'마일 하이 시티'라는 별명의
도시답게 계단 중간에  "ONE MILE ABOVE SEA LEVEL"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아내와 나는 그곳에 앉아 한가한 마음으로 덴버 시내를 바라다 보았다. 

 

다시 16번가 반대쪽 끝을 향해 걸었다.
16번가에는 몰라이드 MALL RIDE 라 부르는 무료 셔틀버스가 자주 다닌다.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우리는 도로변의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그냥 길을 따라 걸었다. 

 

 

16번가 북쪽 끝의 반환점은 탯터드커버 서점 TATTERED COVER BOOK STORE 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여유로운 내부 책장 진열이 서점이라기 보다는 마치 도서관 같은 분위기였다.
책장 사이 곳곳에 의자와 소파까지 있어 사람들이 제 집처럼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기도 했다.
서점의 역사는 뜻밖에 길지 않았다. 1971년에 점원 두명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덴버를 대표하는 서점이 되었다. 이름난 대형 서점들이 속속 위기를 맞는 시절에
이처럼 '비효율적인' 공간 운영의 서점이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지만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서점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생각이 좀 유치하단 생각도 들었다. 

 

 

 

덴버 시내 걷기를 마치고 레드락 원형극장 RED ROCK AMPHITHEATRE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았다.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덴버의 날씨는 연중
300일 이상이  맑다고 하지만 세부적으로보면 고원지대라 그런지 변화가 많다고 한다.
그런 속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비가 쏟아지는 중에도 서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더니
야외극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햇살이 내려쪼였다.

레드락 원형극장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으로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린 곳이라고 한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무료로 개방을 한다.
거대한 붉은 바위 사이의 절묘한 곳에 자리 잡은 극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였다. 

비지터센터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는 이곳에서 공연을 한 유명인들이 연도별로 정리 되어 있었다.
덴버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가수 존덴버는 무려 16회의 공연을 하였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야구경기가 열리는 저녁까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시간에 맞춰 야구장으로 가려고 호텔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 날씨가 변해 바람이 불고
비가 흩날렸다. 정말 종 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우리는 16번가의 한 햄버거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야구경기가 취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비와 바람의 기세가 좀 누그러들기를
기다려 일단 야구장까지 가보기로 했다. 막상 길로 나오자 비가 흩뿌리는 나쁜 날씨에도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경기장 입구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비는 여전히 내렸다. 경기장의 안내원이 비가 곧 개일 거라고 했다. 

 

예정시간보다 20분이 지연된 끝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홈팀 콜로라도 로키즈 COLORADO ROCKIES와 캘리포니아에서 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격돌이었다. 사실 콜로라도 로키즈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이미 확정된 하위팀이나 관중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경기 시작 전에는 빈자리가 많아 보이더니 경기가 시작되자 대부분의 좌석이 채워졌다.
최근에 인기에 있어 아메리칸풋볼에 밀린다고하나 야구는 여전히 미국을 상징하는 운동이라 할만 했다.

아내와 나는 캘리포니아 주민으로서 자이언츠를 응원해야 하나 아니면 몇년 전 김병연이 있었던
콜로라도를  응원해야 하나를 두고 잠시 논의를 하다가, 지연보다는 혈연을(?) 택하기로 했다.
솔직히 어느 곳에서나 무조건 홈팀을 응원하는 게 좋다는 눈치작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쿠어스필드 COORS FIELD 는 1995년 건축 당시 스폰서를 담당한  쿠어스맥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덴버 인근에 쿠어스맥주 공장이 있다고 한다. 쿠어스필드는 공기 압력이 낮은 '마일 하이 시티'에
지어져 다른 구장에 비해 홈런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선 홈런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야 경기가 끝났다. 밤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아무래도 쿠어스 맥주가 어울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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