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
모든 것은 마지막이 있어 아름답다지만 여행의 마지막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함께 한다.
더군다나 여행 대부분을 따라다니던 궂은 날씨가 시치미를 떼듯 구름 한 점 없는 원색의
파란 하늘을 드러내 보일 때 그 아쉬움은 증폭되어 다가왔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해 여름 설악산에 오르기 위해 내설악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예보에도 없는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백담산장에 묵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거세어졌다.
가끔씩 비가 소강상태를 보일 때가 있어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려고 하면 위험하다고 산장지기가 말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낮술에 취해 잠을 자거나 걸어서 백담사를 오가며 계곡의 물살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가지고 온 부식과 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철수를 결정한 날 아침,
날은 눈부시게 개었다. 우리는 아쉬움에 하늘을 원망하며 백담계곡을 걸어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날들은 그 뒤로 몇 번인가 설악산을 오른 기억보다
더 선명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 남아 있다.
생각해보니 누구보다도 독특하게 설악산에서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번 뉴욕여행를 그 설악산행과 같이 분류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날씨 때문에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좀 다른 모습의 뉴욕을 여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기억 속에 비 오는 뉴욕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날씨로 인한 ‘손익계산서’는(?) 제로라고 해야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아내와 내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는 일뿐이리라.
걸어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13년의 공사 끝에 1883년에 완공된 브루클린 브릿지는 늘어진 케이블이 멋진 다리였다.
‘스틸하프’라는 별명도 있다던가.
이층으로 구분 지어 아래쪽은 차가 다니고 위쪽에선 사람들이 걷거나 달리기했다.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친근감이 드는 다리였다.
한강에 있는 멋진 구조의 거대한 다리들 중에 이 같은 다리가 있는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 쪽에서 맨하탄을 건너다보았다.
우뚝한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다.
며칠 동안 저 건물들 사이 어느 곳인가에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느 여행 안내서에나 나오는 ‘상투적인’ 곳들이었지만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엔 모두 특별한 장소였고 특별한 시간으로 저장되었다.
리틀이태리의 북쪽 ( NORTH OF LITTLE ITALY)을 줄여서 놀리타 NOLITA 라고 부르는 곳에서 피자로
뉴욕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롬바르디스 LOMBARDI'S (32 SPRING ST., 212-941-7994)에서였다.
한 음식사이트에서 ‘우주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라는 '우주 최고의' 극찬을 한 곳이다.
그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았다. 1894년에 문을 열었다니 오래된 식당이다.
인기가 좋아서 그런지 현금만 받았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특별히 원하지 않았는데 창가 좌석에 배정되었다.
이륙하는 비행기 속에서 뉴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 도시는 우리에게 여행 전과는 다른 의미가 되었다.
겨우 일주일 남짓한 단 한번의 여행이 무슨 거창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을 리는 없다.
다만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잡지의 사진 속에 뉴욕이 나올 때
혹은 뉴욕을 묘사한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감정과 상상으로 잠시나마 눈을 반짝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극적이고 격렬한 변화에 대한 갈망의 수위를 낮추며 사는 것. 작은 변화에 큰 의미를 심는 것.
아내와 나는 그것이 반드시 나이가 든 탓 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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