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동쪽 바닷가 마을에는
2천만년된 바위가 있다.
단면이 육각형내지는 삼각형으로 된
긴 기둥 모양의 바위가 겹쳐저 아름다운 형상을
띈 것으로 주상절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언젠가 울산으로 내려간 길에
아침바다가 보고 싶어
아내와 바닷가 모텔에서 잠을 잔 뒷날 아침,
바닷가를 거닐다
경운기에 가득 실린 엄청난 양의 배추를 다듬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배추를 절이기 위해 말없이 바닷물을 긷고 있었다.
"(울산) 시내에서 회사에 다니는 애들 거 꺼정 담가야지요.
맞벌이를 하느라 애들이 워낙 바뻐놔서... "
두 아들의 가족을 위한 김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힘드시겠다는 나의 우문에
"자식들 해주는 게 힘드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 는
현답을 주신 늙은 내외는
물 한통이라도 길어주겠다는
나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하셨다.
문득 그분들이
2천만년 동안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어온 주상절리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또 언제였던가
경북 의성의 해묵은 석탑을 보고 나오는 길목,
한 공중변소 망가진 스위치 박스 안에서
몇 개의 알이 담긴 새둥지를 만났다.
옹색하기 그지 없는 그곳에
자신의 분신을 낳은 미물이라고
'새대가리'의 아둔함이라고
함부로 탓할 수 없었던 것은
창문 밖 나무에서
짐짓 딴청을 부리는 척하면서도
화장실을 나서는 내게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던 어미새의 긴장감이
짜릿하게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오래고 오랜 주상절리의 바위처럼 그 자리에서
이 혼탁한 세상을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온 지고의 사랑이었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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