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머리 염색(곱단이의 글)

by 장돌뱅이. 2013. 6. 4.


*위 사진 : 고흐의 자화상(워싱턴D.C. 내셔널 갤러리에서 촬영)

신혼때의 일이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를 깎아달라는 남편의 말에
아무런 자신감도 없이 가위를 손에 잡았었다.
커다란 보자기를 목에 둘러놓고
미장원에서 보았던것을 상상하며
마음대로(?) 가위질을 이리저리 해대었었다.
잘라달랜다고 배운것도 없이...
참 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난다.
뭘믿고 맡기는지 남편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않고 태연스럽다.

결과는 회사의 상사분이 지어준 별명인
'새마을형 머리'에서 모든것이 나타난다.
그래도 남편은 그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않고 잘지냈었다.

미국에 와서 20여년만에 남편의 머리를 다시 만졌다.
신혼때처럼 가위를 잡은 대신 비닐장갑을 손에 끼웠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와서 염색을 하기위해서이다.
여기는 워낙 손으로 하는 모든것이 비싸다고해서
염색약을 사가지고 돌아온것이다.

설명서대로 두개의 튜브에 있는것을 반씩 섞어 휘휘 저었다.
둘다 흰색인게 이게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의심이 가기도했다.
겁이 없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지
뭐 해보지하는 심산으로 머리에 조금씩 묻혀갔다.

남편의 머리에는 언제 그렇게 많은 흰머리가 생긴것인지
그냥 밖에서 볼 때는 희끗희끗하더니
온통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있었다.
마음이 짠해지는게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그냥 농담을 하며 장난을 치며 염색을 마쳤지만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안고있는 흰머리카락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흰머리의 숫자만큼 우리가 같이 세월을 보내온 것인가.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었나.
같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마음이 뿌듯해지기도하고
빨리 지난 시간들에 착잡해지기도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게한 하루였다.

(2008.3)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절주말 강행군  (0) 2013.06.04
박남준 시집 『적막』  (0) 2013.06.04
'딱쇠' 장돌뱅이  (0) 2013.06.04
장돌뱅이가 그러면 되나  (0) 2013.06.04
이청준의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0) 2013.06.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