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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이청준의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by 장돌뱅이. 2013. 6. 1.


*위 사진 : 2007년 가을 이청준의 고향 생가에서


소설(가)과 이야기(꾼)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이청준의 소설.
주인공 “무소작”의 어린 시절과 성장하여 떠돌아다닌 이야기, 그리고
늙은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다닌 세상의 여러 곳의 진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다가 더 이상의 관심을 끌기 어렵게 되자 다시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지만 그가 떠난 자리에 늘 그의 이야기가 남는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이야기꾼의 상징인 꽃씨 뿌리는 할머니에 대한 몽환적인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그 할머니는 아이도 못 낳고 혼자서 고단하게 살아가던 할머니였다.
하느님이 그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래라. 너는 그럼 아이를 낳지 못한 대신에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꽃씨를
   뿌리고 다니거라. 그래서 세상을 온통 아름답고 즐거운 꽃낙원으로 꾸미도록 하여라.
   그래 그 할머니는 그로부터 하느님이 내려주신 꽃씨주머니를 지니고 온 세상을 돌아
   다니며 헐벗은 산이나 들녘,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찾아 골고루 꽃씨들을 뿌려주고
   다니셨단다. 지금 저 산이나 들녘도 아마 그 할머니가 꽃씨를 뿌려 저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인지도 모른단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따금 다리가 아파 한곳에 주저앉아
   쉬면서도 잊지 않고 계속 꽃씨를 뿌리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곳엔 저렇게 무더기 꽃이
   피고, 자리를 일어나 다른 곳을 찾아가시며 흘린 꽃씨들은 저 혼자 외톨이 꽃이 피고.  

무소작씨는 종내 그 할머니가 되어 떠돌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는 꽃과 전설이 되어 남았다.
젊은 시절 한 때 빠져들었던 이청준씨의 소설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길을 더 멀리 떠나간 고을들에선 그 세상 이야기가 모두 진달래며 봉숭아며
   해바라기 국화 같은 갖가지 고운 꽃의 전설로 변해갔고, 노인이 그 꽃의 전설을 전해
   주고 간 곳에선 그 전설들이 제각기 꽃씨로 변하여 해가 바뀌고 나면 이곳저곳 그
   꽃들이 피어나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으론 그 꽃전설을 전하고 다니는 노인의
   모습이 웬일인지 할아버지에서 차츰 할머니로 바뀌었고, 그로부터 할머니는 아예 그
   꽃전설 대신 이꽃 저꽃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이야기로 변해갔다.

소설가 이청준이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이겨내기를,
거뜬히 일어나 아름다운 꽃 같은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주기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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