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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캄보디아

2003 캄보디아 여행기 2. - 뽀첸통 국제공항에 내리며

by 장돌뱅이. 2012. 4. 6.


* 캄보디아의 앙코르 맥주.

캄보디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천공항을 향해 강변도로를 달리는 직행버스 속에서 문득 자문하여 보았다.
프놈펜, 크메르루즈, 폴폿, 킬링필드, 론놀, 시하누크, 그리고 그 유명한  앙코르왓에,
구태여 더 들자면 몇 개의 캄보디아 회사와 캄보디아인 몇 명.
그것이 다였다.
그나마도 단어적인 의미 이상으로 아는 것이 없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라는 사실에서 한마디 더 붙일 것이 없고
한때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렸던 몇 명의 정치지도자 이름만 외워질 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그들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거기에 70년대의 내전과 외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간단한 사실과
그곳에 천 년의 역사를 지닌 거대한 사원 앙코르왓이 있다는 단편적인 사실 이외에는
전혀 무지의 나라였다.

한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을 딴 이른바 ‘박스컵(PARK'S CUP) 축구대회’에
참가하였던 크메르의 축구대표팀에 대한 기억이 그것이다.
우리가 늘 3대0 정도로
이기던 팀이라 크메르와의 경기는 승패보다도 몇 골이나 넣을까에
초점을 맞추던
싱거운 관심사였다. 그 때문인지 기억나는 크메르 축구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방콕에서 프놈펜으로 가는 타이항공은 그다지 크지 않은 비행기였음에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십여 명의 승객이 각각 좌석 한 줄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우기철인 여름에는 여행비수기에 해당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프놈펜보다는 앙코르왓이 있는 시엠리엡으로 가는 직항로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일까?
한두 명을 빼고 승객의 대부분은 비즈니스차 프놈펜을 찾는 듯한 복장이었다.

이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프놈펜 상공에 도착하였음을 알려주는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나는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돌려 창문에 이마를 대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산이 없는 광활한 평야지대에 들어선 프놈펜의 작고 소박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가지 옆으로는 누런 흙탕의 강물이 초록의 들과 도시를 가르며 넓은 길처럼 누워 있었다.
푸른 들과 검붉은 황토는 멀리 지평선 끝에서 하늘의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지며
점차 힘을 잃어가는 저녁의 잔광과 어울려 습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현재 캄보디아의 공식적인 국가명은 ‘THE KINGDOM OF CAMBODIA’이다.
1953년 독립 이래 6번째 이름이라고 기내에서 읽은 여행안내서에는 쓰여 있었다.

   - THE KINGDOM OF CAMBODIA (1953)
   - THE KHMER REPUBLIC (1970)
   - DEMOCRATIC KAMPUCHEA (1975)
   - THE PEOPLE'S REPUBLIC OF KAMPUCHEA (1979)
   - THE STATE OF CAMBODIA (1989)
   - THE KINGDOM OF CAMBODIA (1993)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저 들과 강과 도시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이름을 그렇게 자주 바꾸어야 했을까?
외세와 정권의 주체에 따라 바뀌고 또 바뀌어야 했던 나라의 이름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였으며 사람들은 그 격변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 온 것일까?
상념을 비집고 비행기는 뽀첸통 국제공항으로 가볍게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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