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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코마노가 쏘아올린 기쁜 공

by 장돌뱅이. 2013. 7. 18.

연장전 포함 지루한 120분의 경기는 일본 팀의 코마노가 승부차기에서 크로스바를 맞히는 '기쁜' 슛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 일본 탈락을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순간 나는 사무실의 한국인 직원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함께 일하는 멕시칸 직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더 이상 일본 축구가 우리 보다 좋은 성적을 내서 배가 아파질 우려가 없어졌는데 환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이 심사가 좀 옹졸한 작태이지만 솔직한 심정인 걸 나도 어쩔 수 없다. 내일 아침 주차장에서 만날 지도 모를 이웃집 일본인 하라씨에게는 잠시 일본의 탈락을 애석해하는 척 위선적 태도를 보여야 하겠지만.

죤듀어든이라는 서양인이 쓴 축구 칼럼은 나의 이런 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위안(?)을 준다.

나이지리아 전 이후 일본의 16강 행을 기원하느냐는 외국 기자들의 질문에 기성용은 웃으면서 답했다.
“저는 아시아팀들이 16강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아시아 축구가 계속 발전하고 있거든요.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팀 중 하나이고, 일본도 여기에 합류한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겁니다.”

이는 정중한 발언이었고 공식적인 인터뷰에 대한 모범 답안이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일본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달랐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잘해서 기쁘다. 하지만 내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나는 일본의 활약에 시기심 혹은 질투를 느꼈을 것 같다.

언론과 선수들은 계속 ‘한일 양국이 함께 16강, 8강에 가자’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게 과연 꼭 필요한가? 나는 한국의 복잡한 역사와 한일 양국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략적인 사건과 상황들은 파악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양국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성숙한 관계의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축구에서도 그래야 하나? 한국이 왜 굳이 라이벌의 선전을 기원해야 하는 걸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없다. 이탈리아가 꼴찌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보며 슬프다고 느꼈던 유럽인들이 있었을까? 내가 장담하지만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 '빌드‘지가 뽑은 타이틀은 ’하하하하‘였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인 ’더 선‘은 ’Italian Sob'이었다. Sob은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말하는데 영화 ‘Italian Job'의 운율을 살려 제목을 지은 것이었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에 프랑스의 탈락을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있을까?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프랑스가 엉망진창의 분위기로 망가지는 것을 기쁘게 즐겼을 뿐이다. 잉글랜드가 떨어져 나간 지금 라이벌 국가에서는 마찬가지의 반응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이는 그저 축구를 즐기는 경험의 일부이고 분위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일들이다.

어쨌든 라이벌리즘은 필요하다. 가끔은 라이벌 팀이 내가 응원하는 팀보다 잘 할 수도 있지만 삶과 축구의 모습이 다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쓴 맛도 삼킬 수 있어야 한다. 라이벌보다 항상 잘하거나 라이벌이 너무 못하면 그 관계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끔은 라이벌이 처절하게 망하고 우리만 잘 되는 날도 필요하다.
이 얼마나 달콤한 순간인가? 우리 팀이 못하고 있는데 라이벌이 더 못하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물론 국민들이 일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면 그 역시 멋진 일이다. 그러나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한 지금, 일본에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 미성숙하거나 옹졸한 행동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은 어디까지나 라이벌이고, 축구 팬으로서 라이벌의 실패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다.

(2010.6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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