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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장돌뱅이의 무한도전

by 장돌뱅이. 2013. 7. 30.


*위 사진 : 브로콜리두부죽

언젠가 아내가 일이 있어 집을 비운 적이 있다. 딸아이와 내가 밥을 차려 먹어야 했다.
아내가 밥은 전기밥통에 반찬은 접시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 터라 그냥 밥을
푸고 반찬을 꺼내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딸아이에게 외식을 제안했다.
솔직히 먹고 난 뒤에 설거지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의 속셈을 눈치 챈 영악스런
딸아이는 비싼 음식을 먹는 조건이 아니면 사양하겠다고 버티었다. 하는 수 없이
추가 지출을 해야 했다. 딸아이는 뜻밖의 외식에 싫지 않으면서도 나의 게으름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충고했다.
"아빠는 어쩌다 한 번 하는 설거지도 이렇게 싫어하는데, 매일 해야하는
엄마는 어떻겠어? 앞으로 엄마 일도 많이 도와줘!"
따지고 보면 외식에 동조한 딸아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한데 말이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 그때 근사한 외식을 시켜주고도 초등학생의 딸아이에게 
'근엄한' 충고까지 들으며 그저 머리만 긁적여야 했던 이유는 그 때보다 앞선 지난 날
딸아이에게 설거지에 관해 저지른 다음과 같은 '전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전과'는 누가 뭐라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내와 딸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뜬금없는 제안을 하면서 자초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우리(딸아이와 나)가 설거지를 해서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자."
라고 말을 꺼낸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잦은 술과 늦은 귀가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일까? 평소의 나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내가 한 것이다.
어린 딸아이에게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배 어쩌구하는 어려운 말까지 써가면서 일주일에
설거지 한번이 무슨 의식 있는 페미니스트의 증표라도 되는 것처럼 폼을 잡은 것이다.

아내는 평소에 바퀴벌레 다음으로 무서운 것이 설거지라던 남편이 왜 저러나 싶었겠지만,
스스로 나서서 뭔가 하겠다는데 딴지를 걸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니 바라만 보는 것으로,
순진한 딸아이는 명분에 눌려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사안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그 주말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딸아이는 기꺼이 활기찬 표정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일주일 뒤 주말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나의 '경거망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그랬지? 술이 덜 깼었나?.' 농담처럼 나의 속내를 드러내보며
은근히 아내가 "그냥 쉬어. 내가 할께." 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아내는 "음식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까짓 설겆이 몇 개 가지고 뭐야." 하며
전혀 동정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늘 저녁은 외식으로 하자."
딸아이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이를 배신으로 규정했고 아내는 혀를 차며 반대를 했다.
애초부터 외식을 책임질 수 없는 초등학생 딸아이로서는 배신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나는 사정과 애원 끝에 외식 허락을(?) 받았다. 과다한 비용 지출로 설거지란 '중노동'은
피했지만 그날 이후 '신용불량자'로의 추락은 피할 수 없었다.

나의 부엌일 기피증은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어릴 적엔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나의
사고방식에 부엌일이란 소프트웨어를 입력시켜 주지  않은 유구한 전통에 있고, 자라서는 
그것을 다운로드 받아 저장하지 않은 나의 후천성 게으름에 있다. 
아니 굳건한 방화벽 설치에 골몰한 부지런함에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어릴 적 어머니는 부엌은 물론 우물가에서 떠먹는 물 한그릇도,  남자는 부엌에서 멀리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내가  직접 못하게 하셨다. 그것은 당신 시대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내 나이 대에서도 그런 통념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으나
나는 말로는 그런 변화는 인정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이중성을 가져왔던 것이다. 캠핑이나 여행 중에만 겨우 손에 물을 적시는 것으로,
그래서 "밖에 나가면 내가 하잖아." 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미국에 주재하면서 가끔씩 아내와 헤어져 지내는 시간이 생긴다.
아내가 일이 있어 한국에 다녀올 때다. 나의 선천적, 후천적 부엌기피증을 잘 이해하고
있는 아내는 자신의 부재 중 나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해놓고 간다. 김치와
갖가지 밑반찬, 그리고 국을 종류별로 한약봉지만한 비닐에 담아 냉동실에 가득 채워
놓는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꺼내 전자렌지에 데워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홀애비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가급적 부엌 발걸음을 최소화 하는 생활방식을
택한다. 무엇보다 먼저 식사를 과일로 대용하는 횟수가  늘인다. 물론 이것은 식생활의
개선과는 전혀 상관없는 변화다. 과일 중에서도 바나나나 귤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칼을
사용하거나 과일을 씻는 수고로움 없이도 풍성한 속 내용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내가 마련해둔 음식은 아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종종 다 소진할 수 없게 된다. 
나와 부엌간의 거리는 가히 남북관계만큼이나 멀었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이번 아내의 부재기간 동안 뜬금없이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내가? 음식을?' 하며 우스워지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호기심과 같은 관심이 생기자. 단순히 고기 굽기나 참치찌개 같은
캠핑용 음식 말고 집에서 먹는 보통의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거머리처럼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마침내 한국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뜻 부엌에서 음식일을 시작하기에는
기초가 너무 없었기에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조언을 부탁한 것이다. 아내는 그런 나의
결심에 반색을 하며 기꺼이 고문직을 수락했다.
일단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오후에 저녁식사를 담당하기로 했다. 인터넷의 요리관련
정보를 찾아보았다. 가급적 '적당량'이나 '알맞게 끓으면' 등의 애매한 표현보다는 
재료의 양이나 조리의 시간이 정확히 숫자로 표시된 정보를 우선적으로 택했다. 
그렇게 조리법은 인터넷 정보의 모방일 뿐이니 구태여 적을 필요없이 만들어진 음식
사진만 첨부해본다. 만들어내는데 급급한 터라 장식까지는 염두에 두질 못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으니 다음부터 이것도 신경 써볼 작정이다.

첫 음식은 스테이크였다. 메인이 구운고기인 음식이라 번거롭지 않아 보였고 
접시에 담아내는 다른 재료들도 비교적 간단해 보여서 택한 음식이었다.


*위 사진 : 처음 만든 스테이크소스의 맛에 자신이 없어 일단 조금만 뿌렸다.
              여차하면 참기름으로 
금장
만들어 찍어 먹으려고.

두번째는 두부전골이었다. 두번 연속 서양식을 할 수도 없고 요리를 시작한 이유가
평범한 일상의 요리인지라 한식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거기에 두부는 아내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지라 선정해 보았다. 겁없이 도전했다가 후회도 했던
음식이었다. 멸치육수를 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데치고 지지고 무치고 재우고 생각보다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 아내는 끙끙거리는 나를 바라보면 웃음을 흘리다 한식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위 사진 : 아내가 "감동"이라는 극찬을 해주었는데 사진은 영 그래 보이지 않는다. 
               겁없이 
시작했다가 경상도 말로 '시껍하며' 만들었다.

저녁만 할 것이 아니라 아침도 한번 해보고 싶어, 그리고무엇보다 간단하여 죽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코스트코에서 사다 놓은 잣이 있어 그것으로 잣죽을, 그리고 이런저런
재료로 브로콜리두부죽을 만들었다.


*위 사진 : 잣죽

깜빡 잊고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이외에도 직원들과의 캠핑에서 히트를 친 닭날개구이와
김치순두부가 있다.

아내는 내가 만든 모든 음식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다. 다만 모처럼 믿기지 않는 일을 시작한 남편에게 격려의 차원일 것이다. 
속 보이는 뻔한 칭찬도 듣는 쪽에서 기분 좋은 법이다. 나는 그 '감언이설'에 기꺼이
넘어가 쉽게 우쭐해진다.
마치 단 며칠 태권도 기초 품세를 배운 주제에 무예의 고수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누가
시비  걸어주기를 바라며 우슥한 골목을 기세등등하게 쳐다보고 가는 어린애들 처럼. 
"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다 말해!"

나의 음식 만들기는 일이라기보다는 놀이다. 생전에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를 거니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늦은 나이에 처음 경험한 일이지만 재미가 쏠쏠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모습을 아직 변화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향후 어느 정도 지속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점에 있어서 아직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예전의 장돌뱅이로 회귀하는 '요요현상'을 보일지 내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이제까지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무료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려서  아내의 품평을 기다리는 일요일의 오후가 더 흥미로워지고 즐거워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일을 오래 지속할 지도 모르겠다고 예감하는 이유이다.
이번 주 일요일의 메뉴는 "부대찌게"다.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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