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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38 - 서울 을지로 입구 "충무집"

by 장돌뱅이. 2013. 8. 22.

생선과 곡식, 과일과 채소 등에 대한 인공 재배와 보존 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철 음식이 줄어들었다. 시장에 가면 언제든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편리함과는 반대로 자연과 계절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향과 맛은
사라지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노는 골목길을 은은히 적셔오던
향긋하고 구수한 냉이된장국 같은 냄새는 이제는 맡기 힘들게 된 것이다.
한국에 있을 적 시장에서 사온 냉이는 형태만 냉이일 뿐이라고
아내는 푸념을 하곤 했다.

제철 음식이 귀한 이유이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있는 식당 충무집(02-776-4088)은
봄철에만 도다리쑥국을 내놓는다. 중요한 자연산 쑥이 봄에만 나오기 때문이다.
도다리 또한 ‘봄 도다리’라고 하여 봄이 제철이니 쑥과 제대로 된 궁합을 이룬다.

도다리쑥국은 이미 끓인 도다리국에 쑥이 얹어져 나온다.
쑥만 데쳐지면 바로 먹으면 된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쑥이 너무 익으면 향이 사라지고 질겨진다고 했다.

도다리쑥국은 쑥에서 나온 봄향기가 그윽하고 소박하다. 복숭아꽃처럼
화사한 봄이 아니라 양지쪽 비탈에 핀 할미꽃 같이 수수한 봄이다.
충무집에서 사람들은 도다리 쑥국과 함께 멍게비빔밥을 먹는다.
나도 같이 두 가지를 주문하였다. 먼저 향긋한 쑥과 담백한 도다리 살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남은 국물과 함께 멍게비빔밥을 먹었다.
강한 멍게의 향에 도다리쑥국의 맛이 묻힐까 저어해서였다.
멍게비빔밥 또한 멍게 특유의 향긋함이 입안에 오래 남는 맛이었다.

쑥은 봄이 깊어지면 질기고 억세어 못 먹게 된다.
그때 충무집 메뉴에서 도다리쑥국도 사라진다.
지금쯤이면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자.
내년 새봄엔 묵힌 입맛이 도다리쑥국의 향을 더욱 키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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