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36 - 서울 논현동 "노들강"

by 장돌뱅이. 2013. 8. 15.

민어 하면 어릴 적 부모님의 어란이 생각난다. 학교 다니기 전이라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업이 농사였던 부모님께서 아마 부업으로 어란 가공을 하셨던 것 같다. 바다에서 먼 서울 변두리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바다 생물을 다루는 사업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셨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요즘의 황태 덕장보다는 작지만, 제법 넓은 공지에서 말리는 틀 속에 가지런히 널려있던 민어 알의 풍경이 어슴프레 기억난다. 맛난 알을 노리는 개나 고양이, 쥐나 새 등의 습격을 감시하고 일정 시간마다 어란을 뒤집으며, 저녁엔 거두어들이고 다시 이튿날 내놓는 등의 덕장 관리를 위해 고용한 일꾼이 늘 한두 명 있었다. 과수원 부근의 민어 알 ‘덕장’ 그리고 구워 떡국 모양으로 썬 민어알 - 사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옛 민어 비즈니스의 전부이다. 거기에 맛에 차이가 없을 것임에도 왜 성한 것을 안 주고 옆이 터진 알만 구워주느냐고 공연한 심통을 부리던 어린 나의 모습도 함께.

민어 알은 2편이 한 쌍인데 말리면 넓적해져서 타원형의 단면을 지닌 김밥용 햄처럼 되었다. 붉은 색깔도 햄과 비슷하다.  이를 포장하여 서울 시내(아마 동대문시장?) 도매상에 가져갔던 것 같다.

민어(民魚)는 길이가 큰 놈은 1미터에 달하며 수명이 13년에 달하는 장수(長壽) 물고기이다.
옛날부터 경기도와 충청도의 여러 곳에서 잡혔고, 전라도와 황해도 그리고 평안도에서도 잡혔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바다 밑이 뻘인 곳에서 서식하므로 동해 쪽에서는 만나기 힘들다.

민어는 비늘과 쓸개를 빼고는 다 먹는다. 회로 먹고 찜으로 먹고, 무침으로 탕으로도 먹고 말려서도 먹는다. 특히 민어탕은 반가에서 복달임으로 즐겨 찾았으며 임금님 수라상에도 자주 올랐다고 한다. 부레와 껍질의 맛 또한 일품이어서 '날껍질에 밥 싸 먹다 논 팔았다'는 식담도 생겨났다.

민어의 등은 짙은 청흑 색이지만 속은 연한 분홍빛이다. 한방에서는 ‘위장을 열어(開胃) 식욕이 없는 사람에게 입맛을 당기게 하며, 배뇨를 도와주는(下膀胱水)’음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롭지 않은 음식이 어디 있으랴. 여름철 산란기에 부레를 움직여 우는 소리를 내어 뱃사람들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많았다는 민어는 안타깝게도 점차 어획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제철은 아니지만 강남의 논현동에 있는 식당 노들강(02-517-60440에서 민어회를 먹어보았다.
노들강은 회는 대파 위에 얹혀 나왔다. 대파 향에 담담한 회맛이 묻힐까 그냥 먹기도 하고 직원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싸 먹기도 했다. 어느 것에서나 민어의 졸깃함은 느낄 수 있었다. 기름장에 먹는 부레와 껍질의 질감도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민어탕은 구수했다. 민어를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나 식당 직원에게 물었다.

“민어알 구운 것도 있나요? 어릴 적 자주 먹어서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어란은 없는데요. 어릴 적 부자셨나 보네요. 그 비싼 어란을 자주 드셨다니...”

본의 아니게 내가 헛자랑을 한 꼴이 되었다. 좀 머쓱했지만 그게 아니라고, 부지런하신 부모님의 옛 부업 덕분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우스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밀려드는 후회.
아, 그때 옆구리 터진 어란이라도 많이 먹어둘 것을! 

*노들강은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3번 출구로 직진, 리츠칼튼 맞은편 골목 안에 있다. 

(20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