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매운 낙지볶음을
먹기 시작한 건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절 아내가 자주 가던
곳이 명동의 “명동할머니낙지집”이었다. 값이 싸고 매웠지만 맛은 좋았다.
지금은 옛날 맛보다 못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옛날엔
매우면서도 뒷맛이 달았는데, 언제부터인지 그냥 사납게 맵기만 하다. 이곳
뿐만이 아니다. 서린동, 무교동 일대의 낙지볶음집이 대부분 그렇다. 마치 누가
더 맵나를 경쟁하는 것 같다.
90년대 초 인도네시아에 살 때 그곳 고춧가루가 그랬다. 색도 좋고 맵기도 했는데,
김치를 담그면 속으로 스며 들지 못하고 맛이 겉돌았다. 그냥 맵기만 ‘오살나게’
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치만은 '금추가루'로 부르던 한국 고춧가루로만 담갔다.
서울 시내 낙지볶음의 맵기만 맛의 이유도 외국산 고춧가루에 있지 않은지 짐작해본다.
내게 매운 맛을 ‘보여준’ 아내는 요즈음 나보다 매운 것을 못 참아한다.
지금은 아예 먹지를 않는다. 나이가 들며 생긴 변화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그런데도 매운맛이 인기를 끄는
것은 먹고 난 뒤의 개운함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매운 고통을
전달 받은 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통제인 엔돌핀을 분비하게 되어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내와 나는 매운 낙지볶음을 뺀 낙지요리는 여전히 좋아한다. 특히 다른 양념
없이 다시마 국물에 낙지를 넣고 마늘, 쪽파 , 참기름 등을 넣어 끓여낸 연포탕은 맛이
담백하고 개운하여 즐겨 찾는다. 낙지는 '뻘 속의 산삼'이다. 피곤을 다스리는 타우린
성분이 많다고 한다. 옛날부터 농번기에 지친 소에게 낙지 두세 마리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봄에는쭈꾸미 가을엔 낙지다.
광화문에 있는 신안촌의 연포탕은 소문만큼 흡족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메뉴판에
중국산을 사용한다고 적혀있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대신에 “산낙지에 참기름
소스를 발라 굽는 신안촌 대표메뉴”라고 쓰여 있는 낙지꾸리에 만족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낙지꾸리에 쓰는 낙지는 국내산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맛있는 낙지가 한자로 낙제어(落蹄魚)라고 쓰므로 ‘낙제(落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수험생들에게 금기식이 된 것은 낙지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역시 『자산어보』의 설명이 간결하다.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
신안촌에서 먹은 매생이국도 오래간만에 맛보는 남도음식이었다.
매생이는 원래 김발에 자주 붙어 김농사를 방해하는 바다 잡초로 어민들의 애물건지였으나
이제는 이른바 ‘웰빙재료’로 각광을 받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매생이는 남도 일부 해안에서만
나므로 매생이국은 전라도만의 특산음식이다.
위 사진은 낙지꾸리이다. 다른 음식의 사진은 먹느라 찍지 못했다.
신안촌은(02-7389960)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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