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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서초동 "최후통첩" 아내와 제9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초동으로 나갔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를 '최후통첩'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검찰 개혁 결과를 잠시 지켜보고 기대에 미치지 않을 경우 다시 돌아오자고 다짐을 했다. '최후'의 의미는 겁박이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이었으리라. 서초동 집회에 대해 "검찰개혁을 표방한 사실상의 관제집회"라는 야당의 주장은 치졸한 억지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으로밖에 세상을 볼 줄 모른다. 국가나 권력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나 징집영장밖에 없는" 아내와 나의 참석은 누가 등을 떠밀어서가 아니다. 허울 좋은 명분에 휘둘리거나 홀려서도 아니다. '도 아니면 모'하는 식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갇혀서도 아니다. 60년이 넘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기본적.. 2019. 10. 13.
내가 읽은 쉬운 시 145 - 함민복의「게를 먹다」 꽃게라는 이름은 ‘곶해(串蟹)’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곶’은 꼬챙이의 옛말로 게의 등딱지 좌우에 있는 두 개의 날카로운 뿔을 의미한다. '곶해'가 곳게로 다시 꽃게로 바뀌었을 것이다. 한자어로는 '화살 시'를 써서 시해(矢蟹)라고도 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두 눈 위에 한 치 남짓한 송곳 모양의 것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다. 또 "대체로 게는 모두 잘 달리나 헤엄은 치지 못하는데 이 게만은 부채 같은 다리로 물속에서 헤엄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어 이름도 스위밍 크랩(swimming crab)이다. 꽃게는 봄엔 알이 가득 한 암게를 가을엔 살이 쫀득쫀득한 수게를 먹는다. 간장게장은 6월 암게로 담근다. 암게와 수게의 구분은 보통 하얀 배 쪽을 보고 한다. 암게는.. 2019. 10. 12.
내가 읽은 쉬운 시 144 - 문태준의「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 문태준의 시「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 비가 잦은 가을이다. 더불어 날씨도 쌀쌀해졌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하루이틀 사이에 눈에 띄게 두터워졌다.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을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며 반복해서 읽었다. 여름이 배경인 시 같지만 가을 분위기도 난다.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고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가자. 2019. 10. 8.
내가 읽은 쉬운 시 143 - 중국 책「문기유림(問奇類林)」중의 글 또 가을 태풍. 제18호 '미탁'의 북상.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하루종일 집에 머물렀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한편 보고 난 후 음악을 들으며 빈둥거렸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아내는 붓글씨를 썼다. 저녁에 10일 전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담근 막걸리를 걸렀다. 작은 잔에 덜어 시음을 해보니 시중에서 이제까지 사먹던 막걸리와는 다르게 단맛이 덜하고 다소 시큼했지만 은근한 담백함도 있어 먹을만 했다.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막걸리에 전이 빠질 수 없는 노릇.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 감자, 애호박, 양파 등을 꺼내 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와 잔을 나누었다. 차분하고 한가한 하루였다.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을 얻지 못하니 (不是閑人閑不得 불시한인한부득) 한가한 사람이 등한한 사람은 아니.. 2019. 10. 3.
내가 읽은 쉬운 시 142 - 나해철의「죽란시사첩 머리말」 엄폰(AUAMPORN)은 90년 대 초 태국 거래처의 젊은 구매 팀장이었다. 공평하고 냉철한 일처리로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 받았던 그녀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내겐 매우 깐깐하고 까칠한 고객이었다. 매너는 좋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게 거리를 유지하며 틈을 내주지 않았다. 어떨 때는 우리의 경쟁사에 발주를 하여 애를 태우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졌지만 업무라는 공식적인 관계가 우선했다. 몇 년 후 그녀가 나의 영업과는 상관없는 회사로 옮겼다. 업무라는 형식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우리가 티격태격 했던 지난 일은 비로소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그녀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나도 잘 아는, 성실한 청년과 결혼을 했다. 그 뒤 그녀가 서울에 왔을 때 함께 .. 2019.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