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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2

늦가을 제주도에선 가을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한라산이나 오름들을 올랐다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주로 해변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만나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초록의 상록수들이었다.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이나 떨어진 낙엽은 육지 친구들이 올린 카톡방 사진 속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내와 집 주위를 산책하며 '밀린' 단풍 구경을 했다. 이미 절정을 지났지만 냉랭한 공기와 함께 가을의 정취는 더 진하게 다가왔다.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 김초혜, 「가을의 시」- 2022. 11. 20.
병실에서 10 맛없는 병원밥. 설혹 진수성찬이라도 병원밥이란 게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의 노점상 꼬치보다 못하겠지만, 단체 급식임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그냥 맛이 없다. 입원 초기 이틀인가 먹다가 포기하고 직접 해 먹기로 했다. 다행히 집이 가까워 후다닥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정하면 가능했다. 단조로운 병원 생활에서 그나마 우리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일과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집에 다녀오는 길에 어느 덧 선선해진 기온을 느낀다. 정신없이 보낸 며칠 사이에 가을이 불쑥 와버린 것 같다. 음식과 함께 이 바깥공기도 아내에게 퍼 나르고 싶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얼마나 황홀한가 황홀 속에 맞는 가을은 잔고가 빈 통장처럼 또한 얼마나 쓸쓸한가 평생 달려왔지만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못하.. 2022.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