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10

by 장돌뱅이. 2022. 8. 26.


맛없는 병원밥.
설혹 진수성찬이라도 병원밥이란 게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의 노점상 꼬치보다 못하겠지만, 단체 급식임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그냥 맛이 없다. 입원 초기 이틀인가 먹다가 포기하고 직접 해 먹기로 했다. 다행히 집이 가까워 후다닥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정하면 가능했다. 단조로운 병원 생활에서 그나마 우리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일과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집에 다녀오는 길에 어느 덧 선선해진 기온을 느낀다.
정신없이 보낸 며칠 사이에 가을이 불쑥 와버린 것 같다.
음식과 함께 이 바깥공기도 아내에게 퍼 나르고 싶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얼마나 황홀한가
황홀 속에 맞는 가을은
잔고가 빈 통장처럼
또한 얼마나 쓸쓸한가
평생 달려왔지만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네
가여운 내 사람아
이 황홀과 쓸쓸함 속에
그대와 나는 얼마나 오래
세상에 머물 수 있을까

- 정희성, 「가을의 시」 -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아픔이 길이 되려면』  (0) 2022.08.27
병실에서 11  (2) 2022.08.27
병실에서 9  (0) 2022.08.24
병실에서 8  (0) 2022.08.23
병실에서 7  (0) 2022.08.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