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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8

by 장돌뱅이. 2022. 8. 23.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뼈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민태원의 유명한 수필「청춘예찬」의 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 '생의 찬미'와 '뼈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를 자각하고 들었던가? 별로 실감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에 얼마나 튼튼한 몸과 생생한 피부를 구가했던가는 나이가 들어 몸 곳곳이 탈이 나기 시작하면서 실감 나게 떠올려 볼 수 있을 뿐이다. 젊었을 때 호랑이 한두 마리 때려잡지 않은 노인은 없다는 말은 허풍에 대한 풍자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와 함께 있는 정형외과의 병실은 대부분 노인들 차지다.
60대의 아내는 이곳에서 어린이에 속한다. 최소 70대 이상이다. 고관절, 무릎관절, 발목관절, 허리 압착 등등 입원의 주된 이유는 거의 퇴행성이다. 호랑이도 잡을 듯했던 기세가 세월에 속절없이 무너져 수액을 꽂고 누워있거나 보조기에 기대어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거동마저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간병인은 가족도 있지만 전문간병인이 많다. 

현재 서울·경기의 간병인의 80% 이상이 중국 조선족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입국이 제한되면서 간병비가 치솟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7만 ∼ 8만 원 정도였던 간병비는 코로나19로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현재는 평균 12만 원  15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 까다로운 간병의 경우 하루 19만 원까지 부르는 경우도 있다." 고  8월 22일 자 국민일보는 보도하였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부양자들의 부담은 가중되어 심지어 '간병 파산'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나는 더 이상 백수가 아니라 일당 19만 원의 어엿한 노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 연평균 출생수 100만을 기록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엔 둔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겠다. 그들의 돌봄에 필요한 인적·물적 비용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연간 출생수가 30만 명에 못 미치는 인구절벽의 사회가 약 700만 명에 달한다는 고령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의 마지막 시기를 지나는  노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보장해주는 것 또한 국가와 사회의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 뱀다리 : '존엄 유지'의 당위는  노인들에게만이 아니라 간병하는 이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의 혜택에 무임승차한 배짱이들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으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그것도 취약한 부분을 감당하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노동에서 결과까지 이주민들의  권리는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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